러시아는 왜 ‘특수 군사 작전’을 선택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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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왜 ‘특수 군사 작전’을 선택했나
  • 자주민주평화통일민족위원회
  • 승인 2022.05.15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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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 성조기, 나토기, 우크라이나기.&nbsp;&nbsp;<br>
▲ 성조기, 나토기, 우크라이나기

많은 이들이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한 보도를 접하며 '러시아가 왜 저러나?'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한국 언론 보도는 러시아를 일방적으로 악으로 몰아세웁니다.

다른 한편에서는 미국의 책임론을 제기하지만 소수입니다. 과연 무엇이 진실인지, 러시아는 과연 왜 그러는 것인지에 관해 살펴보려 합니다.

나토는 무엇?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을 두고 가장 많이 이야기되는 화두 중 하나는 ‘나토 동진’ 문제인데요, 이를 알아보기 전에 나토가 무엇인지부터 살펴보겠습니다.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소 냉전이 시작되는데, 미국이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만든 것이 나토입니다. 1949년 12개 나라(미국, 캐나다,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이탈리아, 노르웨이, 덴마크, 아이슬란드, 포르투갈 등)가 워싱턴에서 북대서양 조약에 서명하면서 북대서양조약기구(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 나토(NATO)가 탄생하였습니다.

​동구권도 이에 대응해 1955년 바르샤바 조약기구를 만들었습니다. 1955년 당시 회원국은 소련, 독일민주공화국(동독), 루마니아, 불가리아, 알바니아,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 헝가리 등 8개국이었습니다.

러시아를 압박하는 나토의 동진 확장

​1990년대 초 소련이 해체되면서 냉전이 끝났습니다. 바르샤바 조약기구는 1991년 7월 1일 공식적으로 해체를 선언했습니다. 독일 통일 과정에 미국은 소련에 NATO의 영역을 당시(1990년) 수준에서 확장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다만 조약과 같은 명문화된 약속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1990년대 말부터 나토는 확장을 시작합니다. 1999년 체코, 폴란드, 헝가리가 가입하였습니다. 2004년에는 불가리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가, 2009년에는 알바니아, 크로아티아가, 2017년에는 몬테네그로가, 2020년에는 북마케도니아가 가입하면서 점점 러시아에 대한 압박 강도가 세졌습니다.

​나토는 미국의 대소 적대시 정책의 산물입니다. 미국은 지금까지 자국의 말을 듣지 않는 나라들을 공작과 군사적 침략으로 무너뜨리고, 자기 말을 잘 듣는 정권을 세워 왔습니다. 소련이 무너지는 데에도 미국의 적대적 압박 공세가 한몫했습니다.

소련에 대한 적대시 정책은 러시아에 대한 적대시 정책으로 이어졌습니다. 소련이 러시아로 바뀐 직후는 러시아 내부 상황을 지켜보는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푸틴 정권이 들어서고 러시아가 호락호락하지 않게 되면서부터는 대러시아 압박 정책을 본격화합니다. 그러면서 유럽 나라들의 나토 가입국 확대가 시작됩니다.

​1999년에 체코, 폴란드, 헝가리가 2004년에 루마니아와 불가리아가 2009년에는 알바니아가 순차적으로 나토에 가입하면서 이전 바르샤바 조약기구 회원국 전체가 나토 회원국이 되었습니다. 앞에서도 살펴본 바와 같이 이외에도 다수 나라가 나토에 가입하였습니다.

​그 결과 현재 유럽에서 도시 국가를 제외하고 NATO에 가입하지 않은 나라는 영세중립국인 스위스, 오스트리아, 일반 중립국인 스웨덴, 핀란드, 아일랜드, 그리고 중립국이었던 구 유고 출신의 세르비아와 보스니아, 구소련 소속이었던 우크라이나와 몰도바 그리고 이젠 나토와 척진 러시아, 벨라루스 정도가 있습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대러시아 압박 수단인 나토 가입국이 늘어나는 것, 그리고 이전 시기 바르샤바 조약기구 회원국 전체가 나토 회원국이 된 것 등은 러시아에 큰 압박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나토는 군사 동맹입니다. 미-러 대결이 격화하면 나토가 적대적 군사 행동까지 벌일 수 있다는 말입니다.

부쿠레슈티 정상회담

​이 과정에 2008년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정상회담도 있었습니다. 2008년 4월 2일에 나토 26개국 정상이 참여한 회의입니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에 대한 러시아의 격렬한 반발의 출발점 같은 사건입니다. 회의에서는 러시아와 미국의 치열한 공방이 펼쳐졌고 다른 나라들은 조심스러운 태도로 지켜보았습니다. (이후 2009년 크로아티아와 알바니아가, 2020년 북마케도니아가 나토에 가입하였습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 회의에서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실존적 위협(existential threat)"으로 여기며 이를 반드시 저지하겠다고 천명하였습니다. 당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도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이 러시아를 자극할 것이라며 반대하였습니다.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진 ‘실존적 위협’ 상황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옛 영토입니다. 우크라이나 나토 가입은 그동안 나토 동진, 확장과는 또 다른 의미를 가집니다. 러시아의 입장에서는 마치 턱밑에 비수를 들이대는 것과 같은 느낌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최근에도 미국을 비롯한 서방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나토 가입 문제를 두고 공방을 계속해왔습니다. 러시아는 서방 나라들이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지 않도록 보증하길 바랐습니다. 하지만 미국과 동맹국은 우크라이나가 주권 국가로서 안보 동맹을 결정할 자유가 있다며 가입 금지 요구를 거부했습니다.

​결정적으로 지난해 11월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과 디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교부 장관은 ‘미국-우크라이나 전략적 파트너십 헌장’을 체결했습니다. 이 헌장에서 미국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에 대한 약속을 재확인했습니다. 이를 두고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부 장관은 “끓는 점에 도달했다”라고 경고했고,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포기를 서면으로 약속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미국은 이를 무시했습니다.

​전쟁 발발 직전인 2월 17일 러시아는 자신의 안전 보장 안에 미국 측이 동의하고 법적 보장을 해주지 않는다면 군사 기술적 수단 이행을 포함한 대응이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미국과 나토에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공급을 중단할 것’과 ‘우크라이나와의 합동 군사 훈련을 중단할 것’ 등도 요구하였습니다. 이때에도 미국은 이를 무시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걱정 어린 시선으로 우크라이나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우크라이나는 계속 나토 가입을 시도했고, 미국 또한 어떤 전향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이 결과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것입니다.

​이런 전후 사정을 두고 현실주의 국제관계 이론의 대가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교수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원인은 미국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미국과 우크라이나가 계속해 러시아의 요구에 응하지 않고 위협이 가증되자 러시아가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군사 작전에 돌입했다는 것’이 미어샤이머 교수의 시각입니다.

​5월 4일 미국 국방부가 공개한 자료는 이런 주장에 힘을 보탭니다. 미국 국방부는 “미군은 특수 군사작전 발발 때까지 우크라이나 서부 르비프 지역에 있는 야보리프 전투훈련센터에서 우크라이나 군을 훈련해왔다.

미 플로리다주 방위군 53보병여단의 태스크포스팀이 교관을 맡았다.”, “2022년 1월까지 미군은 야보리프에서 23,000명의 우크라이나군을 훈련했다.”, “2월 들어서는 미 유럽군 사령부가 훈련센터를 독일 그라펜뵈어로 옮겨 미군과 나토군 무기 사용법을 우크라이나군에 교육했다"라고 언론 발표까지 하였습니다.

​이처럼 전쟁 발발 직전의 상황은 러시아가 매우 심각한 ‘실존적 위협’을 느낌으로써 ‘특수 군사 작전’을 선택할 만한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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