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안 칼럼] 김상진 열사 47주기를 맞아 이땅의 지식인들에게 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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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안 칼럼] 김상진 열사 47주기를 맞아 이땅의 지식인들에게 고함!
  • 유영안 서울의소리 논설위원
  • 승인 2022.04.12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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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김상진 열사 양심 선언문

[서울의소리] 1975년 4월 11일,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축산학과에 다니던 복학생 김상진 학생(당시 26세)이 박정희 유신 독재에 반대하며 양심 선언문을 낭독하고 할복해 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결국 숨을 거두었다. 서울대학교 역사상 대학생이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죽은 첫 번째 사건이다.

그리고 오늘 김상진 열사의 47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유일하게 서울의 소리가 생방송으로 현장을 중계했는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이 발견되었다. 당시 같이 민주화 운동을 했던 동기들이나 선후배들은 다수 보였으나 현재 서울대학교 재학중인 학생이나 교수들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김상진 열사의 직속 후배인 농대생 한 명만 보여 기분이 씁쓸했다.

© 서울의소리

주지하다시피 박정희는 5.16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은 후 수 많은 민주인사를 탄압했고, 스스로 종신 대통령을 하기 위해 유신을 선포했다. 재판 후 바로 사형을 집행해버린 ‘인혁당 사건’은 우리나라 사법의 흑역사로 남아 있다.

박정희 정부 시절, 민주화 운동의 중심은 서울대학교였다. 그 후 수많은 열사들이 군부 독재에 저항하다가 목숨을 잃었다. 그 역사가 박종철로 이어졌고, 연세대 출신 이한열의 죽음과 함께 유월항쟁의 기폭제가 되었다.

지금도 생각난다. 이한열의 장례식 때 문익환 목사가 “김상진 열사여, 박종철 열사여, 이한열 열사여...하며” 외친 목소리 말이다. 그 문익환 목사도 지금 하늘로 가고 안 계신다. 문익환 목사와 같이 민주화 운동을 하셨던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도 하늘에 계신다.

그분들이 김상진 열사 47주기 추모제를 하늘에서 내려다보면서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무엇보다 서울대학교 재학생이 한 명밖에 보이지 않은 것에 매우 서운하셨을 것 같다. 마침 서울대학교 법대 출신 윤석열이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니 기분이 더 묘했을 것이다.

배운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저 일류대 나와 좋은 곳에 취직해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본질일까? 적어도 이 땅의 지식인이라면 왜 이땅이 분단되었으며, 어떻게 통일을 이룰지를 고심하며 살아야 한다.

하지만 요즘 대학생이나 대학 교수들을 보면 솔직히 한숨이 나온다. 조국 가족에 대한 대자보는 그렇게 줄기차게 붙이고, 칼럼은 그렇게 열심히 쓰면서 윤석열 본부장 비리에 대해선 침묵하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다른 말은 필요 없다. 1975년 4월 11일, 김상진 열사가 읽은 양심 선언문을 소개하면서 이땅의 지식인들에게 스스로 각성하라고 말하고 싶다.

<양심선언문>

김상진 열사가 자결한 곳 
김상진 열사가 자결한 곳 

​더 이상 우리는 어떻게 참을 수 있으며 더 이상 우리는 그들에게서 무엇을 바랄 수 있겠는가? 어둠이 짙게 덮인 저 사회의 음울한 공기를 헤치고 죽음의 전령사가 서서히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을 우리는 직시하고 있다. 무엇을 망설이고 무엇을 생각할 여유가 있단 말인가?

대학은 휴강의 노예가 되고, 교수들은 정부의 대변자가 되어가고, 어미닭을 잃은 병아리마냥 우리들의 반응 없는 울부짖음만 토하고 있다. 우리의 주장이 결코 그릇됨이 아닐진대, 우리의 주장이 결코 비양심이 아닐진대, 우리는 어떻게 더 이상 자존을 짓밟혀 불명예스런 삶을 계속할 것인가? 우리를 대변한 동지들은 차가운 시멘트 바닥위에 신음하고 있고, 무고한 백성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가고 있다.

​민주주의란 나무는 피를 먹고 살아간다고 한다. 들으라! 동지여! 우리의 숭고한 피를 흩뿌려 이 땅에 영원한 민주주의의 푸른 잎사귀가 번성하도록 할 용기를 그대들은 주저하고 있는가! 들으라! 우리는 유신헌법의 잔인한 폭력성을, 합법을 가장한 유신 헌법의 모든 부조리와 악을 고발한다. 우리는 유신헌법의 비민주적 허위성을 고발한다. 우리는 유신헌법의 자기중심적 이기성을 고발한다.

​학우여! 아는가! 민주주의는 지식의 산물이 아니라 투쟁의 결과라는 것을. 금일 우리는 어제를 통탄하기 전에, 내일을 체념하기 전에, 치밀한 이성과 굳은 신념으로 이 처참한 일당독재의 아성을 향해 불퇴진의 결의로 진격하자.

​민족사의 새날은 밝아오고 있다. 그 누가 이 날의 공포와 혼란에 노략질 당하길 바라겠는가. 우리 대한학도는 민족과 역사 앞에 분연히 선언한다. 이 정권이, 끝날 때까지 회개치 못하고 이 민족을 끝까지 못살게 군다면 자유와 평등과 정의를 뜨겁게 외치는 이 땅의 모든 시민의 준열한 피의 심판을 면치 못하리라. 역사는 이러한 사태를 원치 않으나 우리는 하나가 무너지고 또 무너지더라도 무릎 꿇고 사느니 차라리 서서 죽을 것임을 재천명한다.

​탄압과 기만의 검은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보라. 우리는 이제 자유와 평등의 민주 사회를 향한 결단의 깃발을 내걸어 일체의 정치적 자유를 질식시키는 공포의 병영국가가 도래했음을 민족과 역사 앞에 고발코자 한다.

이것이 민족과 역사를 위하는 길이고, 이것이 우리의 사랑스런 조국의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길이며, 이것이 영원한 사회정의를 구현하는 길이라면 이 보잘것없는 생명 바치기에 아까움이 없노라.

저 지하에선 내 영혼에 눈이 뜨여 만족스런 웃음 속에 여러분의 진격을 지켜보리라. 그 위대한 승리가 도래하는 날! 나! 소리 없는 뜨거운 갈채를 만천하에 울리게 보낼 것이다.

김상진 열사는 이 양심선언문을 읽은 후 과도를 꺼내 자신의 복부를 찔렀다. 김상진 열사는 죽어가면서 학우들에게 “애국가를 불러달라.”고 했으나 서울대병원으로 후송 도중에 끝내 숨을 거두었다.

김상진 열사의 시신은 하루 만에 강제로 화장됐고 유족들은 몰래 유골을 담아야 했다. 군부 독재는 아들의 장례마저 제대로 치르지 못하게 방해했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때도 분향소를 못 차리게 방해한 세력이 바로 그 후예들이다.

김상진 열사가 가신 지 47년, 서울대학교 학생들과 교수들은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 동문인 윤석열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일까. 지금의 20대 대학생들에게 말하고 싶다. 지금 그대들이 누리는 이 자유가 그저 온 것 같은가?

취업도 잘 안되어 먹고 살기 힘든 시대, 그대들에게 시위 현장이나 촛불 집회 현장에 나오라는 말은 하지 않겠다. 다만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정도는 알고 살아야 할 것 아닌가?

공정과 상식이라는 대의명분을 내걸고 대선에 출마해 당선된 그대들의 선배 윤석열이 자랑스러운가? 본부장 비리는 다 덮어주고 정적들은 가혹하게 수사해 도륙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보는가?

그렇다면 왜 김건희의 박사 학위 논문 표절, 20가지가 넘은 학종 학력 및 경력 위조에 대해선 침묵하고 있는가? 그 잘난 대자보와 칼럼은 왜 쓰지 않은가 말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제발 부끄러운 줄 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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