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파] 윤석열의 마지막 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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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 윤석열의 마지막 결재
  • 뉴스타파 김경래
  • 승인 2022.02.18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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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2월 9일) 공수처가 한명숙 사건과 관련한 수사 방해 혐의에 대해 윤석열 대선후보를 불기소 처리하겠다고 발표했다. 공수처는 2021년 6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입건해 수사해 왔다. 한명숙 사건 수사 검사가 증인에게 위증을 교사했다는 의혹에 대한 감찰 수사를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이 방해했다는 혐의였다. 공수처의 결론은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것이었다. 

2020년 뉴스타파는 과거 한명숙 사건에서 검사가 증인에게 위증을 교사했다는 의혹을 보도했다. 이후 감찰이 시작됐고, 법무부 장관이 지휘권을 두 번 발동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결국 검찰은 증인들을 불기소 처리했고 공소시효는 지나갔다. 검사의 위증 교사 혐의에 대한 수사는 시작도 하지 못했다. 이번 공수처 발표로 기나긴 소동은 일단락이 된 셈이다. 

하지만 2년 전 뉴스타파가 제기한 의문은 아직 풀리지 않았다. 한명숙 재판에서 증인들이 한 거짓말은 상당수 드러났고, 검사의 거짓말도 확인됐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과 공수처의 불기소 결정은 과연 타당했을까. 사건은 복잡하지만 본질은 간단하다. 증인의 위증이 있었는지, 그리고 검사의 개입이 있었는지 여부다. 뉴스타파는 새롭게 취재된 사실을 추가로 공개한다. <편집자 주>

 

크라이슬러 리무진 교통사고 

큰 사고는 아니었다. 차대차 추돌사고, 그것도 단순 접촉사고에 불과했다. 이런 교통사고는 통계적으로 하루 100건 가까이 발생한다. 하지만 이 단순 접촉사고는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과 연결돼 있었다. 그 연결 고리는 대선 후보 윤석열 전 검찰총장으로 이어진다.

먼저 교통사고 ‘그 자체’에 집중해보자. 사고 발생 시간은 자정을 넘긴 0시 45분, 장소는 경기도 김포시 김포북변동우체국 사거리 근방이었다. 운행 중이던 라세티 승용차를 크라이슬러 리무진이 추돌했다. 크라이슬러 리무진은 웨딩카로 사용되던 차량이었다. 라세티 운전자는 음주상태였다. 일반적으로 음주운전 차량이 가해자가 되고 상대가 피해자가 된다. 경찰이 출동했고 쉽게 처리될 사건이었다.

그런데 라세티 운전자가 경찰조사에서 억울하다고 주장했다. 음주운전은 잘못했지만 리무진 운전자가 일부러 사고를 낸 것 같다는 항변이었다. 자신이 라세티 차량에 타면서 뒤에 리무진이 라이트를 끄고 서 있는 걸 봤는데 (리무진은 매우 눈에 띄는 차량이다), 출발을 하니까 리무진이 곧바로 라이트를 켜고 따라와서 부딪혔다는 게 라세티 운전자의 주장이었다. 

경찰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대부분의 교통사고 당사자들은 억울하다고 주장하기 마련이다. 사고 현장에는 CCTV가 있었다. 경찰이 파악한 사실을 바탕으로 사고를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우체국 사거리에서 우회전한 라세티가 편의점 앞에서 정차를 한다. ①역시 사거리에서 우회전한 리무진이 ②라세티를 지나친다. 라세티 운전자는 편의점에 들어가 음료수를 산다. ③그 사이 리무진이 유턴을 하고 ④정차한 라세티 건너편 차선을 지난다. ⑤리무진이 사거리에서 다시 불법 유턴을 한다. ⑥리무진이 라세티 뒤에 정차한다. 라세티 운전자가 편의점에서 나와 다시 탑승한 뒤 출발한다. 리무진이 따라서 출발한다. ⑦리무진이 라세티에 추돌한다.

▲크라이슬러 리무진과 라세티 승용차의 추돌사고. 경찰은 리무진 운전자가 고의로 사고를 냈다고 의심했다. 
▲크라이슬러 리무진과 라세티 승용차의 추돌사고. 경찰은 리무진 운전자가 고의로 사고를 냈다고 의심했다. 

CCTV에는 리무진이 라세티를 따라다니다 일부러 사고를 낸 것처럼 의심되는 정황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라세티 운전자가 음주 상태라는 걸 어떻게 미리 알고 리무진 운전자가 사고를 냈을지는 의문이었다. 경찰은 본격적으로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은 몇 가지 새로운 사실을 확인했다. 리무진과 라세티 운전자는 같은 아파트에 살았다. 사고지점에서 6.8km 떨어진 곳이었다. 라세티 운전자는 사고 직전 아파트 주차장에서 출발했다. 아파트 주차장에서 대리운전을 부르는 문제로 지인과 크게 다퉜다고 라세티 운전자는 경찰에 진술했다. 경찰은 아파트 주차장에서부터 리무진이 따라갔을 거라고 강하게 의심했다. 

리무진 운전자는 차량을 수리하기 위해서 카센터로 가는 중이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자정이 넘은 시간이었다. 카센터에 미리 전화를 한 내역은 없었다. 경찰 조사가 계속되면서 리무진 운전자와 동승자의 진술은 오락가락했다. 리무진 운전자와 동승자는 병원에 입원했다. 리무진 운전자는 라세티 운전자 가족들에게 보험처리 하지 말고 합의를 보자고 제안했다. 수리비가 7천만 원이 든다는 말도 했다. 

리무진 운전자는 전과가 10범이었다. 상습사기, 변호사법 위반, 특수절도 등 다채로웠다. 가장 최근에는 재력가 행세를 하며 7명의 여성들에게 7천만 원을 뜯어낸 혐의로 구속됐다가, 교통사고 넉 달 전에 출소했다. 경찰은 리무진 운전자를 고의사고를 낸 피의자로 입건했다.

 

'특수부 검사를 잘 아는' 리무진 운전자

리무진 운전자는 고의사고를 의심하고 추궁하는 경찰 조사를 거부했다. 오히려 검사와 친분이 있다고 노골적으로 과시했다. 중앙지검 특수부 검사가 조사 받지 말라고 했다, 검사하고 법전 확인했는데 죄가 안된다, 가만히 있지 않겠다, 민사소송을 하겠다… 리무진 운전자는 경찰에게 엄포를 놨다. 

피의자가 경찰 조사를 받다가 ‘검사를 잘 안다, 정치인과 친하다’는 식으로 본인의 배경을 과시하는 건 드문 일이 아니다. 하지만 실제로 중앙지검 특수부에서 담당 경찰에게 두 번 전화를 해 리무진 운전자에 대해 문의를 했다. 

하지만 담당 경찰은 리무진 교통사고 수사에 의지가 컸다. 담당 경찰은 “살인 사건 만큼 수사 자료가 많다”고 라세티 운전자에게 말했다. 라세티 운전자는 “담당 경찰이 얘네 꼭 잡아야 한다며 엄청 노력했다”고 기억했다. 

경찰은 리무진 운전자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검찰은 반려하고 추가 수사를 지시했다. 경찰은 다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검찰은 다시 반려했다. 경찰은 어쩔 수 없이 검찰 지휘대로 불구속 상태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기소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김포경찰서에서 부천지청으로 송치한 사건은 두 개였다. 라세티 운전자의 음주운전과 리무진 운전자의 고의 사고였다. 검찰은 통상 음주 운전의 경우 경찰 조사를 바탕으로 약식 기소하는 게 관례다. 하지만 부천지청 검사는 라세티 운전자를 따로 불러 직접 신문했다. 

라세티 운전자는 부천지청에서 조사를 받으면서 예상하지 못한 일을 겪는다. 당시 조사를 하는 검사가 이렇게 말했다고 라세티 운전자는 기억했다. “검사가 '음주운전을 하고 사고가 났으면 잘못인 줄 알아야지, 어디서 지금 피해를 입었다고 그러냐'고 했다.” 라세티 운전자는 리무진 운전자가 이른바 ‘빽’을 썼다고 생각했다. 

라세티 운전자의 검찰 조서는 리무진 운전자가 고의로 사고를 낸 것 같지 않다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당시 검찰 수사관이 강압적으로 조서 날인을 강요했다고 라세티 운전자는 주장했다. “제가 말한 게 아니라 (검찰) 수사관이 대답을 요구했죠. ‘얘네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벌금 250만 원 내고 끝나게 해줄 테니까 그냥 지장 찍고 가’ 그렇게 당한 거예요. 제가 술 먹은 건 잘못했으니까 그냥 인정하고 포기한 거였죠.” 검찰은 리무진 운전자를 결국 무혐의 처리했다. 리무진 운전자에게는 안전운전 위반으로 4만 원짜리 범칙금 스티커만 발부됐다.

리무진 운전자는 사건이 종결된 뒤 범칙금 스티커를 들고 김포경찰서를 다시 방문했다. 고의로 교통사고를 냈다고 의심하던 경찰을 찾아갔다. ‘내 말대로 사건이 종결되지 않았나, 내가 이겼다’고 으스댔다.

 

리무진 운전자의 정체 

위에서 설명한 리무진 교통사고는 2010년 11월 27일 발생했다. 검찰이 리무진 운전자를 무혐의 처리한 건 2011년 6월 22일이다. 경찰이 고의사고를 낸 것으로 의심했지만, 검찰과의 친분을 과시하고, 결국 검찰이 무혐의 처리해 준 이 리무진 운전자는 누구였을까. 이 리무진 운전자가 누구인지 밝히기 위해서는 전혀 다른 사건을 언급할 수밖에 없다. 

2010년 검찰은 한명숙 전 총리(이하 한명숙)를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했지만 무죄 판결을 받아 망신을 당했다. 이후 검찰은 한명숙이 한만호라는 사업가로부터 불법정치자금 9억 원을 받았다고 다시 기소했다. 한명숙은 서울시장 선거 야당 후보였다. 한명숙에게 9억 원을 줬다고 검찰조사 때 진술했던 한만호는 재판정 증인으로 서서 그런 사실이 없다고 말을 뒤집었다. 검찰에게 매우 불리한 상황이었다.

한만호는 당시 사업이 부도가 나서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있었다. 검찰은 한만호의 동료 재소자 두 명을 증인으로 세웠다. 이 재소자들은 한만호가 구치소에서 평소에 한명숙에게 돈을 줬다는 말을 했다고 증언했다. 한만호가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한 것은 거짓말이라는 증언이었다. 검찰에게 매우 유리한 증언을 한 셈이다. 재소자 증인은 김00과 최00이었다. 

뉴스타파는 2020년 5월 죄수와 검사 두 번째 시즌을 보도했다. 한명숙 사건 재판 과정에서 검사가 위증을 교사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는 내용이었다. 뉴스타파가 인터뷰한 죄수H는 위에서 등장한 검찰 측 재소자 증인들(김00, 최00)과 함께 검사실에서 증언 훈련을 받았다고 폭로했다. 여기서 등장하는 검찰 측 증인 김 씨가 바로 리무진 운전자였다. (관련 기사 : <뉴스타파, 한명숙 사건을 취재하다> 2020.5.6.)

▲2011년 한명숙 재판에서 검찰 측 증인으로 출석한 김00가 증언하는 모습을 그린 삽화. 경찰에서 고의사고로 의심을 받았지만 검찰이 무혐의 처리한 리무진 운전자가 증인 김00이다. 
▲2011년 한명숙 재판에서 검찰 측 증인으로 출석한 김00가 증언하는 모습을 그린 삽화. 경찰에서 고의사고로 의심을 받았지만 검찰이 무혐의 처리한 리무진 운전자가 증인 김00이다. 

궁지에 몰린 검찰의 중요 증인 

증인 김 씨는 2009년 구속됐다. 재력가 행세를 하면서 7명의 여성들에게 7천만 원을 뜯어낸 사기 혐의였다. 다섯 번째 감옥살이였다. 김 씨는 수감 생활을 하면서 검찰의 정보원 노릇을 했다. 서울구치소에서 한명숙에게 돈을 줬다는 한만호를 만났다.

2010년 9월 김 씨는 출소했다. 그리고 두 달 뒤인 2010년 11월 리무진을 타고 다니다 김포에서 교통사고를 냈다. 경찰은 12월 21일 김 씨를 고의사고를 낸 피의자로 입건했다. 김 씨는 경찰조사를 거부하면서 중앙지검 특수부에 잘 아는 검사가 있다고 말했다. 

이 사이 한명숙 사건은 큰 전기를 맞는다. 2010년 12월 20일 증인 한만호가 검찰 진술을 뒤집고 돈을 준 적이 없다고 법정에서 증언을 했다. 검찰은 궁지에 몰렸다. 한명숙 사건을 담당했던 중앙지검 특수1부는 한만호의 동료 재소자를 뒤졌다. 한만호가 법정에서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야 했다. 

교통사고 피의자로 입건된 다음날인 12월 22일, 김 씨는 한명숙 사건을 담당하고 있던 중앙지검 특수부를 방문한다. 같은 날 검찰 관계자는 리무진 교통사고를 수사하는 김포경찰서에 전화를 걸었다. 이후 김 씨는 중앙지검 특수부 검사실을 들락거리며 증언 연습을 받았다. 증언 연습을 했다는 건 검찰도 인정했다. 다만 거짓말이 아니라 사실을 연습했을 뿐이라는 게 검찰의 입장이다. (관련 기사 : <한명숙 사건, 검사실 ‘증언 연습’ 확인됐다> 2021.2.2.) 

경찰은 김 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검찰에 두 차례 신청했다. 검찰은 두 차례 모두 반려했다. 김 씨는 2월 21일과 3월 23일 한명숙 사건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검찰 측 증인이었기 때문에 변호인은 증인이 검찰과 어떤 관계인지, 다른 사건으로 수사를 받은 게 있는지 캐물었다.

증인이 다른 형사사건으로 수사를 받고 있을 경우 검찰에게 유리한 증언을 할 개연성이 있기 때문이다. 김 씨는 거짓말로 일관했다. 다른 사건으로 수사받고 있다는 사실을 숨겼다. 위증이었다. 아래는 2011년 2월 21일, 한명숙 사건 제 7차 공판에서 벌어진 변호인과 김 씨의 문답 중 일부이다. 

■(한명숙 측) 변호인 : 석방 이후에 이 사건 말고 수사 기관으로부터 소환 되거나 조사를 받은 일이 있습니까?
□김OO : 없고요. 재판 증인으로만 갔다왔어요. 그리고 이 사건으로 말고는 없어요.
■변호인 : 제3자의 사건으로도 조사 받으신 적 없으세요?
□김OO : 없어요. 

▲김OO의 교통사고와 한명숙 재판의 타임라인 비교. 공교롭게도 김OO의 교통사고는 한명숙 사건 재판 증언 일정과 맞물렸다. 검찰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증언을 한 김OO의 범죄 혐의를 덮어 준 것이 아닌지 의심스러운 상황이다. 
▲김OO의 교통사고와 한명숙 재판의 타임라인 비교. 공교롭게도 김OO의 교통사고는 한명숙 사건 재판 증언 일정과 맞물렸다. 검찰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증언을 한 김OO의 범죄 혐의를 덮어 준 것이 아닌지 의심스러운 상황이다. 

법정에서 김 씨는 증언을 이어갔다. 한만호와 잘 아는 사이였는데 감옥에서 재회했고, 한만호가 한명숙에게 돈을 줬다는 말을 직접 들었으며, 검찰이 815특사 등의 약속을 지키지 않아 한만호가 재판정에서 검찰 진술을 뒤집고 거짓말을 하겠다는 말을 했다고 증언했다.

검찰에 매우 유리한 진술이었다. 김 씨의 증언 중 상당 부분은 앞뒤가 맞지 않았고 신빙성이 떨어졌다. 검찰이 김 씨에게 위증을 유도하는 것처럼 의심되는 모습도 보였다. (관련 기사 : <검찰의 삼인성호 작전..모해위증교사> 2020.5.25. <검찰, 한명숙 재판정에서까지 위증 유도했나?> 2020.6.10.)  

김 씨의 법정 증언이 끝난 시점인 2011년 3월 30일, 경찰은 김 씨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부천지청이 수사를 이어갔다. 당시 검찰이 김 씨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수사를 했다고 김 씨의 상대편인 라세티 운전자는 증언한다.

5월 4일 김 씨는 한명숙 수사팀인 중앙지검 특수부에 방문했다. 동행자가 있었다. 보험회사에 다니는 장 모 씨였는데, 장 씨는 경찰에서 김 씨에게 유리한 진술을 한 인물이었다. 6월 22일 검찰은 김 씨를 최종적으로 무혐의 처리했다. 

김 씨를 무혐의 처리한 이주희 당시 부천지청 검사는 봐주기 수사가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 “사실과 전혀 다르고, 해당 사건은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했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전해왔다. 

또 한 번의 반전 : 뒤늦게 드러난 상습 보험 사기

리무진 교통사고는 2011년 6월 마무리됐다. 김 씨는 무혐의로 풀려났다. 그런데 5년 뒤인 2016년 9월 김 씨는 서울중앙지법 재판정에 선다. 5건의 보험 사기를 벌인 혐의로 징역 10개월 형을 받았다. 5건 모두 외제차를 이용해 고의로 교통사고를 내고 보험금을 빼먹은 사건들이었다. 김포 리무진 교통사교와 유사한 사건들이다. 사건 발생 일시는 2011년 8월부터 2013년 8월까지, 리무진 사고에서 무혐의를 받은 직후부터 1년에 한두 건씩 꾸준히 범행을 저질렀다. 

첫 번째 사기의 공범은 장 씨였다. 앞서 리무진 사고 때 경찰에 출석해 김 씨에게 유리한 증언을 했고, 이후 김 씨와 함께 중앙지검 특수부를 방문했던 인물이다. 다섯 번째 사기의 공범은 오 모 씨였다. 리무진 사고 때 김 씨와 함께 동승했던 인물이다. 만일 2010년 리무진 사고에서 경찰의 수사결과대로 처벌이 됐다면 그 뒤 다섯 건의 사기 범행은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김OO은 2010년 리무진 사고 이후에 다섯 건의 보험사기를 친 혐의로 2016년 처벌이 됐다. 리무진 사고 때 등장했던 장OO과 오OO도 공범으로 등장한다.
▲김OO은 2010년 리무진 사고 이후에 다섯 건의 보험사기를 친 혐의로 2016년 처벌이 됐다. 리무진 사고 때 등장했던 장OO과 오OO도 공범으로 등장한다.

검찰의 딜레마 

2020년 뉴스타파는 한명숙 사건을 10년 만에 다시 소환했다. 정치권 등 일부에서 뉴스타파 기사를 제대로 읽지 않고 오해하는 것과는 달리, 한명숙이 유죄인지 무죄인지는 핵심이 아니었다.

뉴스타파가 제기한 의혹은 한명숙 재판 과정에서 검찰이 동원한 증인들이 위증을 했고, 그 위증을 검사가 교사했다는 것이었다. 이후 대검 감찰부가 감찰에 착수했고, 추미애와 박범계 법무부장관이 각각 지휘권을 발동했다. 하지만 증인들과 수사팀에 대한 공소시효는 지나갔고, 사건은 흐지부지 마무리됐다. 

검찰 측 증인 김 씨가 법정에서 거짓말을 한 것은 리무진 교통사고와 관련된 것만은 아니었다. 뉴스타파는 그동안 김 씨의 거짓말에 대해서 여러 차례에 걸쳐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법정에서 거짓말을 했다고 바로 위증이 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이 위증이라고 판결을 해야 위증이 된다. 판결을 하려면 검찰이 기소를 해야 한다. 

검찰 입장에서는 아주 난감한 상황이 된 것이다. 김 씨든 최 씨든 증인을 위증 혐의로 기소를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만약 증인들이 법원에서 유죄로 판결이 나게 되면, 증인들을 연습시켰던 검사와 수사관을 수사해야하고, 그 결과에 따라서 기소도 가능해질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기소권을 독점하고 있는 검찰이 증인들을 순순하게 기소할리는 만무했다. 이 상황에서 '두 사람'이 등장한다. 윤석열 그리고 임은정. 검찰 조직을 뿌리채 흔들 수도 있는 사건을 두고 두 사람은 부딪히게 된다. 

 

윤석열과 한명숙 사건, 3번의 악연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이하 윤석열)는 알려진 대로 특수통이다. 특수부에서 잔뼈가 굵었고, 국정원 댓글 조작이라는 특수수사로 명성을 쌓았다. 윤석열과 한명숙 사건의 첫 번째 인연은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2년부터 1년 가까이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으로 일했다. 중앙지검 특수1부는 2010년 한명숙 사건을 수사했던 곳이다. 2011년 말 한명숙은 무죄를 선고 받았다. 검찰은 항소했다. 2012년 특수1부의 최대 현안은 한명숙 사건의 항소심 공소유지였다. 책임자는 윤석열이었다. 

윤석열과 한명숙 사건의 두 번째 인연은 죄수H의 진정과 관계되어 있다. 죄수H는 2020년 뉴스타파의 보도에서 검찰 측 증인들(최 씨, 김 씨)과 함께 검사실에서 증언 연습을 받았다고 폭로한 인물이었다. H는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검찰이 한명숙을 잡기 위해 '삼인성호 작전'을 벌였다고 주장했다. 

H는 뉴스타파 인터뷰 전에도 같은 내용의 진정을 청와대에 접수한 적이 있다. 2017년 12월이었다. 청와대는 H의 진정을 법무부로 이첩했고, 이후 대검으로, 다시 서울중앙지검으로 넘어갔다. 죄수 H의 진정을 최종적으로 처분한 것은 윤석열이 지검장이었던 서울중앙지검이다.

윤석열은 H의 진정 사건을 특수1부에 배당한다. '특수1부 수사가 조작됐다'는 진정을 특수1부에서 알아보라고 처리한 셈이다. 당시 특수부를 관장하는 중앙지검 3차장은 윤석열의 심복이라고 불리는 한동훈이었다. 2018년 7월 특수1부는 사건을 종결 처리했다. 진정 당사자인 죄수H를 한 번도 조사하지 않은 상태였다. 담당 검사는 공교롭게 김영일이었다. 김영일은 뉴스타파가 죄수와 검사 세 번째 시즌에서, 죄수들에게 부적절한 편의를 제공했다고 보도한 특수통 검사다. 최근 견책이라는 경징계를 받았다. 

윤석열과 한명숙 사건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인연은 검찰총장으로 임명된 뒤였다. 한명숙 재판에서 김 씨와 함께 검찰 측 증인으로 출석했던 또다른 증인 최 씨는 2020년 4월 법무부에 진정을 냈다. H의 주장과 마찬가지로 검사가 재소자 증인들에게 위증을 교사했다는 내용이었다.

최 씨는 위증을 교사하고 증언을 조작한 검사로 엄희준을 지목했다. 엄희준은 윤석열 검찰총장이 검찰 인사를 둘러싸고 추미애 법무부장관과 갈등을 벌일 당시, 윤석열이 대검에 남겨달라고 추미애에게 요청한 6명의 검사 중 하나였다. 최 씨의 진정은 대검 감찰부로 이첩이 됐다.

 

1라운드 : 감찰부에서 사건을 빼앗은 윤석열 

대검 감찰부로 넘어온 최 씨의 진정 사건은 검찰 내부에 일대 소용돌이를 일으키게 된다. 사건은 2020년 5월 22일, 대검 감찰부 감찰3과에 배당된다. 하지만 5월 28일, 윤석열 총장은 사건을 감찰부가 아니라 인권부에 재배당하고 중앙지검 인권감독관에게 보내라고 지시한다.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먼저 사건에 대한 성격 규정이다. 법무부가 사건을 감찰부로 넘긴 것은 증인에게 위증을 교사한 검사의 비위 혐의를 조사하라는 취지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윤석열은 사건을 증언 조작이 아니라 수사 과정에서 비롯된 인권 침해로 한정했다. 다음으로 현실적인 '통제'의 문제다. 감찰부장은 중간 보고를 하지 않고 오로지 감찰의 결과에 대해서만 총장에게 보고한다. 더군다나 감찰부장 한동수는 판사 출신이었다. 감찰부가 사건을 담당하면 검찰총장이 사건을 통제하기 어려워진다는 의미다. 윤석열이 사건을 넘기라고 한 중앙지검 인권감독관 이용일은 2006년 대검 중수부에서 윤석열과 함께 근무한 검사다. 

한동수 감찰부장은 반발했다. 검사의 비위와 관련된 사건이기 때문에 감찰부에서 조사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이유였다. 5월 29일, 총장의 지시를 받은 대검 차장검사 조남관은 감찰부장에게 진정 서류의 사본이라도 인권부에 전달하라고 요청했다. 감찰부장은 인권부에 참고자료로 사본을 전달했다. 인권부는 이 사본을 근거로 중앙지검 인권감독관에게 사건을 이첩시켰다. 이른바 ‘사본 배당’ 소동이었다. 형식적으로 따지자면 하나의 사건이 대검 감찰부와 중앙지검 인권부에 동시에 배당되는 일이 벌어진 셈이다. 

갈등이 해결되지 않자 6월 18일,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나섰다. 추미애는 윤석열 대검이 감찰부장을 무력화하고 있다며 감찰부가 직접 조사해 결과를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중앙지검 인권감독관의 조사도 계속 됐다. 핵심 참고인 중 한 명인 죄수H는 중앙지검 인권감독관의 조사는 믿을 수 없다며 면담 자체를 거부했다. 9월 7일, 대검 감찰부 조사가 진행 중이었지만 중앙지검은 혐의 입증이 어렵다며 사건을 종결했다. 

▲한명숙 수사 검사의 위증 교사 의혹이 처리된 과정. 증인 최OO의 진정이 대검 감찰부로 배당됐지만 윤석열 검찰총장은 사건을 중앙지검으로 넘겼다.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감찰부 직접 조사를 지휘했지만 중앙지검은 사건을 종결했다. 이 국면에서 임은정 검사가 등판했다. 
▲한명숙 수사 검사의 위증 교사 의혹이 처리된 과정. 증인 최OO의 진정이 대검 감찰부로 배당됐지만 윤석열 검찰총장은 사건을 중앙지검으로 넘겼다.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감찰부 직접 조사를 지휘했지만 중앙지검은 사건을 종결했다. 이 국면에서 임은정 검사가 등판했다. 

2라운드 : 임은정의 등판 

중앙지검이 사건을 종결한 뒤 2020년 9월 14일, 법무부는 임은정 검사를 대검 감찰부에 발령했다. 임은정은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 행태에 비판적인 문제 제기를 계속하고 있는 검사다. 감찰부장 한동수는 임은정에게 한명숙 재판 과정에서 벌어진 증인의 위증과 검사의 위증 교사 의혹 사건을 맡겼다. 

임은정의 등판으로 국면은 조금 달라졌지만 한계는 분명했다. 임은정은 부장검사급이었지만 수사권과 기소권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감찰부 검사들과 비교해도 형평에 문제가 있었다. 수사권이 없는 상황에서 조사가 원활하게 이뤄지기 어려웠다.

한명숙 수사팀 검사들에 대한 조사가 가장 핵심이었지만 임은정은 권한이 없었다. 감찰부장은 윤석열에게 임은정의 수사권을 여러 차례 요청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불공정이 우려된다’는 대답뿐이었다. 판사 출신 감찰부장 한동수는 사건에서 사실상 배제된 상태였다. 임은정은 가능한 범위에서 조사를 이어나갔다. 

 

3라운드 : 공소시효를 앞둔 마지막 전투

2021년 2월 22일, 법무부장관은 임은정을 중앙지검 검사 직무대리로 겸직 발령을 내렸다. 임은정에게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한다는 뜻이었다. 윤석열이 감찰부장의 요청을 계속 거부하자 내린 조치였다. 윤석열은 이 소식을 듣고 크게 화를 냈다고 전해진다. 대검은 이례적으로 임은정의 인사에 대한 법적 근거에 대해 공식 질의했다. 법무부는 다른 검찰연구관과 형평이 맞지 않고, 감찰업무 수행에 한계가 있어서 발령했다고 답변했다. 

모해위증과 모해위증교사의 공소시효는 10년이다. 2021년 3월 22일과 3월 6일이 김 씨와 최 씨 두 증인의 공소시효가 완성되는 날이었다. 공소시효 전에 증인들을 기소하면 위증교사 의혹을 받고 있는 검사에 대한 공소시효가 멈춘다. 검사들을 수사해 기소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다는 뜻이다. 임은정에게 수사권이 부여된 시점은 최 씨의 공소 시효가 2주도 남지 않은 때였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고, 대검찰청에서는 조용한 전투가 벌어졌다.

수사권을 손에 쥔 임은정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2월 26일, 임은정은 법무부장관의 지휘에 따라 법무부에 조사결과를 보고했다. 김 씨와 최 씨를 위증 혐의로 기소하고, 엄희준 검사 등 한명숙 수사팀에 대해 공범 여부를 수사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작성해 놓은 공소장도 첨부했다. 

윤석열 검찰총장에게도 내부 결재를 올렸다. 담당과장이었던 감찰3과장 허정수는 입건하지 않겠다는 의견을 달았다. 대검차장 조남관은 총장의 별도 지시가 없었기 때문에 수사권이 있어도 수사를 할 권한이 없다며 결재를 반려했다. 

3.1절 연휴가 끝난 3월 2일, 임은정은 다시 결재를 올렸다. 조남관 차장은 해당 사건의 주임검사를 임은정이 아니라 허정수 감찰3과장으로 지정한다며 다시 반려했다. 임은정은 차장이 아니라 검찰총장의 지시가 있어야 한다며 다시 공문을 올렸다. 

그리고 마침내 윤석열 검찰총장의 사인이 들어간 공문이 내려왔다. 사건이 감찰부로 넘어간지 9개월만에 공식적으로 주임검사를 지정한다는 총장의 지시가 내려온 것이다. 사실상 임은정을 사건에서 배제하겠다는 뜻이었다. 이틀 뒤인 3월 4일, 윤석열은 검찰총장을 사임하고 정치권에 투신했다. 임은정을 한명숙 사건에서 배제한 것이 검찰총장 윤석열의 마지막 결재가 됐다.

▲한명숙 재판 모해위증교사 의혹은 검찰의 치부인 특수부 수사의 병폐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이 사건의 처리를 두고 검찰에서는 조용한 전투가 벌어졌다. 핵심 인물은 윤석열과 임은정이었다. 
▲한명숙 재판 모해위증교사 의혹은 검찰의 치부인 특수부 수사의 병폐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이 사건의 처리를 두고 검찰에서는 조용한 전투가 벌어졌다. 핵심 인물은 윤석열과 임은정이었다. 

마지막 라운드 : 패자부활전은 없었다 

윤석열의 마지막 결재에 따라 허정수 감찰3과장이 주임검사가 됐다. 2021년 3월 5일, 허정수는 한명숙 사건과 관련된 증인과 수사 검사 등 모두를 불기소하기로 결정했다. 3월 6일, 증인 최 씨의 공소시효가 완성이 됐다. 

당시 허정수는 한동수 감찰부장에게 사건 기록 전체를 다 읽어보지 못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허정수는 뉴스타파와의 통화에서 “관련 사건 기록을 다 보지 못했지만, 필요한 범위에서 결론을 내릴 만큼은 충분히 자료를 검토했다”고 말했다. 허정수는 “오히려 한동수와 임은정이 미리 결론을 내려놓고 수사를 했다”고 주장했다. 

3월 17일, 박범계 법무부장관은 지휘권을 발동해 대검부장단 회의를 열어서 결정하라고 지시했다. 조남관 총장 권한대행은 대검부장단 회의에 고검장들까지 불러 모아 회의를 열었다. 여기서도 불기소가 결정됐다. 3월 22일, 증인 김 씨의 공소시효도 지났다. 

2021년 6월, 공수처는 윤석열을 수사 방해 혐의로 입건했다. 2022년 2월 10일, 공수처는 윤석열을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리했다. 임은정은 공수처의 결정이 타당한지 묻기 위해 법원에 재정신청을 내겠다고 밝혔다. 

 

제작진

촬영 : 정형민, 김기철, 이상찬, 김형석

편집 : 정애주

CG : 정동우

디자인 : 이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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