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랑 칼럼] 시단치장(示短致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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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랑 칼럼] 시단치장(示短致長)
  • 이정랑의 고전소통
  • 승인 2022.01.13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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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점을 내보이고 장점을 발휘한다.

명나라 때의 ‘병경백자’ ‘측자(測字)’라는 책에 이런 대목을 볼 수 있다.

이정랑 언론인. 중국고전 평론가. 칼럼니스트<br>
이정랑 언론인. 중국고전 평론가. 칼럼니스트<br>

두 나라 군대가 서로 대치하고 있을 때 장수들은 반드시 상대를 헤아려야 한다. 적을 헤아려 튼튼한 곳을 피하고 허름한 곳을 공격할 수 있어야 한다. 적이 나를 헤아리는 것을 알면 일부러 단점을 내보이고 자신의 장점을 발휘해야 한다. 허점을 잘못 헤아리게 되면 오히려 적의 계략에 말려든다. 한 번의 헤아림으로 양쪽 모두를 경계하고 미처 대비하지 못한 곳을 대비하는 것, 이것이 완전한 전술이요 장수의 기본이다.

이상은 적이 나의 의도를 어떻게 판단하느냐 하는 상황에서 취해야 할 책략이다. 자신의 약점을 일부러 드러내어 상대를 속이고, 자신의 장점을 한껏 발휘할 것을 요구하는 계략이다.

적의 상황에 따라 군대를 활용하는 것은 기본적인 용병 원칙이다. ‘적의 상황에 따른다.’는 것은 대단히 복잡한 과정이다. 적의 상황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주도면밀한 정찰과 정찰 자료를 연결시킬 수 있는 사색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이런 사색과 판단은 지휘관의 책략 수준을 가늠하는 지표가 된다.

‘손자병법’에서 말하고 있는 적의 정황에 대한 ‘32가지 관찰법’은 지휘관의 상황 판단을 위한 일반적이고도 규칙적인 인식을 제공한다. ‘시단치장’은 ‘적이 나를 헤아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 비로소 그에 알맞은 전술과 속임수를 배합하여 적을 착각에 빠뜨릴 수 있다. 이는 ‘이중적’ 또는 ‘양방향적’ 사유라 할 수 있다. 즉, 적이 생각하는 바를 알아내고 적보다 한발 앞서 수를 내다보면서 적을 자신의 틀 속으로 유인하는 것이다.

기원전 200년, 유방을 평성(平城)에서 포위한 흉노의 묵특(冒頓) 선우(單于)는 바로 이 ‘시단치장’의 계략을 써서 유방을 곤경에 빠뜨렸다. 당시 묵특은 대곡(代谷-지금의 산서성 대현 서북)에 주둔하고 있었다. 진양(晉陽)까지 온 유방은 일거에 적을 섬멸하여 북쪽 변방 지역의 근심거리를 뿌리 뽑을 생각이었다.

묵특은 유방을 유인하기 위해 정예군과 살찐 소‧말을 감추어둔 채, 나약하고 비쩍 마른 병사와 가축만을 내보냈다. 유방은 10여 차례 묵특 진영을 정찰한 결과 공격이 가능하다는 보고를 받았다. 이에 고무된 유방은 몸소 32만의 대군을 이끌고 출격했다.

그리고 한편으로 유경(劉敬)을 다시 흉노 진영에 보내 정세를 염탐하게 했다. 대군이 구주(句注-산 이름으로, 지금의 산서성 안문산)에 이르렀을 때 유경이 황급히 유방에게 말했다.

“진군을 멈추십시오. 섣불리 진격했다간 큰일 나겠습니다!”

유방은 버럭 화를 내며 유경을 겁쟁이라 다그쳤다. 그러자 유경이 말했다.

“양군이 진을 치고 대치하고 있는 것은 실력으로 자기 군의 위세를 과시하려 함이고, 기세로 적을 제압하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흉노는 늙고 허약한 병사들과 쓸모없는 말들만 우리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이는 결코 흉노의 진면목이 아닐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 묵특 선우는 정예병을 따로 숨겨놓고 일부러 약하고 무능한 것처럼 꾸며 우리를 유인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절대 섣불리 공격해서는 안 됩니다.”

유방은 자신이 파악하고 있는 정보에 착오가 있을 리 없고 설사 상황에 다소의 차이가 있더라도 수십만 대군이 있는데 무엇이 두렵겠느냐며, 유경의 건의를 나약하기 짝이 없는 헛소리라고 일축했다.

유방은 노기등등하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며, 군심을 동요시켰다는 죄목으로 유경을 광무(廣武-지금의 산서성 안문관 남쪽)로 압송시켜 버렸다. 그러고는 전군을 신속하게 진군시켰다. 묵특은 겁을 먹은 척 도주했다.

흉노의 소멸과 묵특의 생포가 눈앞에 이르렀다고 생각한 유방은 몸소 부대의 맨 앞에 서서 채찍을 휘두르며 말을 몰았다. 후속 부대는 멀찌감치 뒤로 쳐졌다. 순식간에 평성에 이르러 성 밖 백등산(白登山)에서 적의 상황을 살피는데, 갑자기 묵특의 복병이 사방에서 일어나 천지를 뒤흔들 듯 고함을 내지르며 물샐틈없는 포위망을 구축했다.

그제야 계략에 걸려든 것을 안 유방은 산 정상에 올라가 산 입구의 요충 도로를 지키면서 후속 부대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어찌 알았으랴! 흉노의 40만 대군이 일찌감치 한의 선두 부대를 분할하여 포위하고 있었을 줄을. 후속 부대와의 거리는 아직도 까맣게 멀어서 단시일 내에 포위를 풀길이 없었다.

유방은 7일간 꼼짝 못 하고 포위당했다. 식량도 물도 끊어진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것이다. 그러다가 진평(陳平)의 꾀에 따라 엄청난 금은보화를 묵특의 아내 알씨(閼氏)에게 뇌물로 주어 안개 낀 날을 택해서 간신히 포위망을 뚫고 탈출할 수 있었다.(‘내간 內間’ 참조)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간신히 탈출한 유방은 광무로 와서 유정을 풀어주며 아주 간곡하게 말했다.

“내가 그대의 충언을 듣지 않고 경솔히 굴다가 하마터면 목숨까지 잃을 뻔했다. 진짜와 가짜도 구별못하는 자들의 말을 가볍게 믿은 내 탓이다.”

유방은 그 자리에서 유경을 건신후(建信侯)에 봉하는 한편, 흉노를 공격하자고 권고한 자를 참수해 버렸다.

묵특은 ‘시단치장’으로 유방을 이겼다. 반대로 유방은 ‘적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고’, ‘적이 나를 헤아리고 있는 것도 알지 못했으니’, 실로 ‘허점을 잘못 헤아리면 오히려 적의 계략에 걸려든다.’는 말을 그대로 입증한 셈이었다.

이는 ‘거친 것을 버리고 정교함을 취하며, 가짜를 버리고 진짜를 보존하며, 이것에서 저것에 이르고, 겉에서 속으로 이르도록 한다.’(모택동)는 상황 관찰법과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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