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웹자서전] ep.20 어떻게 엇나가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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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웹자서전] ep.20 어떻게 엇나가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관하여
  • 충청메시지 조성우
  • 승인 2021.12.27 05: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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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묻는다. 신기하다고... 가난했고, 초등학교 졸업하자마자 공장에 다녔고, 자주 두들겨 맞았고, 팔도 다치고 후각도 잃었으며, 심지어 공부도 못하게 하던 아버지가 있었는데 어떻게 엇나가지 않았느냐고...

​흔히 소년공들이 그런 것과 달리 나는 술, 담배도 하지 않았다. 공장 회식 때도 술을 마시지 않았다. 가출을 한 적도 없고 비행을 저지른 적도 없다. 월급을 받아 빼돌린 적도 거의 없이 아버지에게 고스란히 가져다주었다.

​어떻게 일탈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은 낯설다. 스스로에게 한 번도 그런 질문을 해본 적이 없다. 대답을 하려 들면 생각은 결국 강이 바다로 흘러가듯 엄마에게 맨 먼저 달려간다.

​넘치게 사랑해주던 엄마가 있었으니 일탈 같은 선택지는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어린 마음에도 엄마를 기쁘게 해주는 일이 가장 우선이었다.

​열다섯 살 때 한 번은 한 달 월급을 고스란히 약장수에게 바친 일이 있다. 점심시간에 공장마당에서 차력을 선보이는 약장수에게 홀딱 넘어간 것이다. 만병통치약이라는데 엄마의 증상과 딱 맞아떨어졌다. 이 좋은 약을 돈이 아까워 엄마에게 안 사준다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다.

​그렇게 약을 사서 보무도 당당하게 귀가했다. 나는 그 일로 그렇게 혼쭐이 날 줄 몰랐다. 한 달 월급을 몽땅 바쳤으니 아버지가 화가 날 만도 했다. 그 길로 이틀을 집에도 못 들어가고 우리집과 뒷집 담벼락 사이에서 잤다.

​공장에 다니면서 돈을 탐낸 적도 없다. 검정고시 준비할 때 용돈만으로는 책과 학용품을 살 수 없어 월급에서 몇 천원, 오리엔트 퇴직금에서 얼마, 그렇게 한두 번 삥땅을 쳤을 뿐이다. 용돈으론 학원 갈 버스비도 부족했다.

​공부를 포기하고 다시 오리엔트 공장에 들어갔을 땐 다시 월급을 고스란히 아버지에게 건넸다. 공부에 쓸 게 아니라면 내게 돈은 의미가 없었다.

그즈음 하루는 엄마가 말했다. 그동안 내가 엄마에게 맡긴 돈이 5만원이라고... 그 와중에도 용돈을 아껴 엄마에게 맡기곤 했던 것이다.

​5만 원은 한 달 월급에 이르는 큰돈이었다. 고민됐다. 평소에 카메라가 갖고 싶긴 했다. 찰나의 순간을 사로잡아 오래도록 기억하게 해주는 마법 같은 도구.

하지만 대입을 포기했으니 출세해서 엄마 호강시켜드리겠다는 결심도 물거품이 된 상황이었다. 엄마에게 금가락지를 해주자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카메라를 포기하자니 아까운 생각도 들었다. 일기장에는 그때의 번민이 고스란히 기록돼 있다.

​아까워? 에이, 도둑놈아! 은혜도 모르니? - 1980. 8. 30

​나는 결국 엄마의 손에 가느다란 금가락지를 끼워드렸다. 엄마는 처음에 엉뚱한 데 돈을 썼다고 펄쩍 뛰었지만 어느 날 이렇게 말했다.

​“재맹아, 내는 이 가락지 끼고 있으먼 세상에 부럽은 것도, 무섭은 것도 없데이.”

​엄마는 슬프고 힘든 일이 있으면 손가락의 금가락지를 매만졌다. 그런 엄마를 보면 마음이 짠했다. 그리고 돈이 어떻게 쓰일 때 가장 빛나는지 알 것 같았다.

​어떻게 엇나가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모르겠다. 일탈조차도 사치였던 삶이라고 할까...

​누구나 사는 게 너무 힘들어 잠시 엇나가더라도 멀리 가지는 마시라. 어딘가는 반드시 그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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