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목 통증으로 밤새 끙끙 앓는 날이 많았다. 하지만 치료 받을 길은 요원했고 치워야 할 쓰레기는 끝도 없이 나왔다. 밤새 쓰레기를 치우고 오면 나는 젖은 박스처럼 구겨져 잠이 들었다.
어느 날 잠결에 엄마와 아버지가 하는 얘기가 들렸다.
“재맹이가 저러다 평생 빙신이 되머 우야니껴?”
“돈 벌어서 수술하머 될끼라.”
“집 살라꼬 모다논 돈으로 아 수술부터 시키야 되잖겠니껴?”
엄마의 말에 의식이 또렷해졌다.
“그 돈은 아무도 손 못 대.”
엄마와 아버지의 말이 머릿속에서 수없이 재생됐다. 한창 예민한 열일곱 살이었다. 가난은 아득해 보였고 한 팔을 못 쓰는 사람이 되어서도 살아갈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온갖 절망적인 생각이 나를 삼키고 있었다. 눈물이 베개를 적셨다.
마침내 나는 모든 것을 포기하기로 했다. 대학입시도, 팔을 고치는 일도 부질없어 보였다. 열심히 살아 교복도 한 번 입어보고 성공한 모습도 보여주고 싶었지만 불가능한 꿈이란 생각이 들었다.
엄마에게 얼마간의 돈을 달라고 했다. 수면제와 연탄을 사야 했다.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을까? 엄마는 돈을 주면서 버릇처럼 입에 달고 살던 말을 다시 반복했다.
“재맹아, 마음 단디 먹어야 된데이. 니는 크게 될 거라고 그랬제?”
엄마의 말이 아프게 가슴을 찔렀다.
다락에 연탄불을 피우고 수면제를 먹었다. 잠은 쉬 오지 않았다. 세상과의 영원한 작별이었다. 슬프기도 했지만 홀가분하기도 했다.
얼마가 지났을까? 나는 멀쩡하게 눈을 뜨고 다시 깨어났다. 연탄불은 꺼져있었고 정신은 말짱했다. 공장 친구들은 그 정도면 죽는다고 했는데... 수면제가 부족했던 모양이었다. 다시 기회를 보기로 했다.
그즈음 오리엔트 공장에서 사람을 뽑았다. 아버지가 원서를 내라고 했다. 어차피 죽기로 한 마당이니 못할 것도 없었다. 취업이 안 될까 걱정됐던 아버지는 빽을 쓰기로 한 모양인지 오리엔트 수위장에게 3천원을 갖다 바쳤다. 돈이 아까웠지만 그렇다고 아버지에게 내일 죽어버릴 거란 말을 할 수는 없었다.
다시 약국에 들렀다. 또 수면제를 달라고 하면 이상하게 여길 듯해 이번에는 동생 핑계를 대고 수면제 20알을 샀다. 약사가 잔소리가 많았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유서를 썼다. 엄마에게 미안했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어 보였다. 너무 지쳤다고 말하고 싶었다. 눈물 때문에 글씨가 잘 보이지 않았다.
다시 연탄불을 붙이고 꾸역꾸역 수면제를 삼켰다.
[이재명의 웹자서전] ep.19 약사의 잔소리
수면제를 20알이나 먹었지만 정신이 말똥말똥했다.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일까? 두 번이나 그러니 이상했다.
그때 별안간 다락방 문이 열렸다. 매형이었다. 매형은 연탄불을 보고는 상황을 금방 눈치챘다.
“처남, 오늘 오리엔트 면접날인데 왜 이렇게 누워있어?”
매형은 짐짓 연탄가스가 가득 찬 다락방 상황을 모른체했다. 그리고는 공장까지 따라오며 괜한 우스개를 늘어놓았다.
오리엔트에 도착하니 면접 볼 시간이 훨씬 지났는데도 수위장이 사무실로 들어가게 해주었다. 아버지가 수위장에게 건넨 3천 원이 효능을 발휘하는 모양이었다.
머뭇거리고 있는데 문득 매형이 내 굽은 팔을 어루만졌다.
“내가 처남 팔 고쳐줄게. 걱정하지 마.”
누나네는 우리 집보다 더 가난했다. 변변한 직업도 없이 과일행상을 하는 매형에게 그럴 돈은 없었다. 그래도 그렇게 말해주는 매형이 눈물겹게 고마웠다.
자꾸 눈물이 나려 했다. 그즈음 나는 툭하면 눈물이 났다.
오리엔트에 결국 합격했다. 그건 대학진학의 완전한 포기를 의미했다. 돌아보지도 않을 생각이었던 오리엔트에 나는 고개를 숙이고 다시 들어갔다. 삶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수면제를 먹었는데도 왜 잠들지 않았을까? 나는 이윽고 약사에게 속았음을 깨달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20알씩이나 먹고서도 멀쩡하게 면접을 보러 갈 수는 없었다. 웬 어린놈이 수면제를 달라하니 상황을 짐작한 약사는 소화제 같은 것을 잔뜩 줬던 것이다.
동네약국의 그 약사를 생각한다. 약사는 폭풍 잔소리를 해댔지만 어쩌면 속으로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얘야. 서럽고 억울하고 앞날이 캄캄해 죽을 만큼 힘들어도, 삶이란 견디면 또 살아지고, 살다보면 그때 죽고 싶었던 마음을 웃어넘길 수 있을 만큼 편안하고 좋은 날도 올 거란다. 그러니 힘을 내렴.’
결국 우리를 살게 하는 건 서로를 향한, 사소해 보이는 관심과 연대인지도 모른다.
약사는 처음 보는 나를, 세상 슬픔은 다 짊어진 듯한 표정으로 생을 끝장내려고 하는 소년을 모른 척하지 않았다. 팔을 고쳐주겠다던 내 가난했던 매형의 말도 진심이었을 것이다.
누구도 홧김에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지는 않는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세상이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생이 벼랑 끝에 몰릴 때, 듬직하게 기댈 수 있는 사회이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