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선의 문화 산책] 논산의 자랑 관촉사(灌燭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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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선의 문화 산책] 논산의 자랑 관촉사(灌燭寺)
  • 논산시의회 의장 구본선
  • 승인 2022.01.0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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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촉사의 국보 제323호 석조미륵보살입상(은진미륵)
은진미륵 부처님에게 기도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
아름다운 관촉사의 추경(秋景)

관촉사(주지 혜광)는 반야산 동남쪽 기슭인 논산시 관촉로1번길 25에 자리한 논산8경의 제1경이고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이다.

관촉사는 은진미륵 부처의 가피가 세상을 제도(濟度)하는 천년미륵도량이다. 석조미륵보살입상(국보 제323호)은 높이 18.2m, 둘레 11m, 귀의 길이 3.3m로 예로부터 은진미륵으로 널리 알려졌다.

관촉사는 968년(광종 19) 혜명(慧明)대사가 창건했다. 창건 2년이 되던 970년부터 1006년까지 37년간 은진미륵 석불공사가 진행됐다.

석조미륵보살입상(은진미륵)

우리는 논산의 자랑인 관촉사를 돌아보며 은진미륵 탄생의 설화에 얽힌 이야기를 나눴다.

반야산에서 한 여인이 고사리를 꺾다가 아이 우는 소리를 듣고, 소리나는 쪽으로 발길을 옮겼는데 아이는 없고 큰 바위가 땅속에서 솟아올랐다. 이 기이한 소식은 조정까지 전해졌다. 조정은 솟아오른 바위를 불상으로 만들도록 당대의 고승 혜명대사에게 임무를 맡겼다.

혜명대사는 100여 명의 석공과 함께 970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1006년(목종 9) 불상을 완성했다. 불상이 세워지자 하늘에서 비가 내려 불상을 씻어 주었고 서기(瑞氣)가 21일 동안 서렸으며, 미간의 옥호(玉毫)에서 발한 빛이 사방을 비췄다고 한다.

중국의 승려 지안(智眼)이 은진미륵 부처에게 예불하는 그 곳에서 발한 광명의 빛이 촛불과 같다하여 사찰 이름을 관촉사로 정해졌다.

관촉사 은진미륵 부처는 국가가 태평하면 불상의 몸이 빛나고 서기가 허공에 서리며, 난이 있게 되면 온몸에서 땀이 흐르고 손에 쥔 꽃이 색을 잃었다는 전설과 함께 이곳에서 성심으로 기도하면 모든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영험담이 전해지고 있다.

 

◇ 대광명전

관촉사 큰 법당인 대광명전은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을 주불로 모시고 있다. 비로자나 부처는 "모든 어둠을 깨뜨리고 광명을 허공에 비추는 비로자나의 청정한 광명이 이제 나타났다"는 의미로 부처의 자비광명이 온누리에 함께하길 기원한다. 흔히 대적광명, 대광보전으로 불린다.

 

◇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은진미륵)/국보 제323호

높이 18.2m의 석불로 은진미륵(恩津彌勒)으로 널리 알려진 불상이다. 2018년 4월 20일 보물 제218호에서 국보 제323호로 승격되었다.
 

◇ 관촉사 석등/보물 232호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 앞에 있는 석등으로 불을 밝히는 화사석(석등의 점등하는 부분)이 중심이 되어 아래에 3단의 받침돌을 쌓고 위로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었다.

평면이 정사각형의 고려시대 방식으로 아래 받침돌과 위 받침돌, 그리고 배례석에 새겨진 연꽃무늬는 오랜 세월의 풍파에도 생생한 자태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 관촉사 윤장대

윤장대는 불교경전을 넣은 책장에 축을 달아 돌릴 수 있게 만든 것으로 한 번 돌리면 경전을 읽은 것과 같은 공덕을 쌓은 것이라 전해진다.

윤장대는 부처의 가피력(加被力)이 사방에 널리 퍼지라는 의미와 함께 나라의 평안과 풍년으로 태평성대의 염원을 담고 있다.

 

◇ 관촉사 석문/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79호

관촉사 석문은 암반위에 세워져 있다. 사찰 입구 양쪽에 돌기둥을 세우고 위면에 다섯 개의 장대석을 얹음으로 사각형의 석문을 만들었다.

돌기둥은 너비 40cm의 직사각형으로 다듬어져 있다. 올라올 때 돌기둥 오른쪽에는 관촉사, 왼쪽에는 해탈문이라 음각되어 있다.

 

◇ 명부전(冥府殿)

아래 명부전/ 위 삼성각

명부(冥府)는 사람이 죽어서 간다는 저승세계이다. 시왕전(十王殿) 또는 지장전(地藏殿)이라고 부른다. 가장 고통이 심한 지옥의 중생을 제도한다. 시왕은 저승에서 죽은 사람이 생전에 저지른 죄를 심판하는 10명의 왕이다.

 

◇ 관촉사 삼성각

관촉사 삼성각은 산신각으로 불리워져 왔다. 산신, 칠성, 독성을 함께 모신 경우 삼성각이라 불린다.

우리는 삼성각에서 발길을 멈췄다. 관촉사의 비로자나불이 안치된 대광명전보다 높은 곳에 자리한 삼성각은 우리 조상들의 문화에 대한 자존심과 지혜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불교가 한반도에 전래된 것은 삼국시대다. 고구려와 백제는 4세기 후반에 중국을 통하여 불교를 받아들였고, 신라는 그보다 150여년 정도 늦은 6세기 초에 불교를 수용했다.

현재 대부분의 사찰에 산신각(또는 칠성각, 삼성각)이 있다. 이는 우리 조상들은 불교를 수용하면서 우리문화인 산신과 칠성을 버리지 않고 조화롭게 승화시킨 사례다.

고유 민간 신앙인 산신(지역 수호신)을 모신 자리를 불교의 큰 법당보다 높은 장소에 설치하여 상징적으로 민족 신앙의 우월성을 과시하며 자존심을 지켰고 우리 문화를 지키면서 계승 발전시켰다.

지금은 관혼상제(冠婚喪祭) 등 조상들이 중히 여겼던 풍습이 소멸되고 있다. 서양문화에 잠식되면서 면면이 이어온 미풍양속과 5천년 역사의 문화가 사라지고 있다.

몽고 징기스칸 제국의 소멸도 자신들의 문화를 버렸기 때문이다. 논산의 인구도 감소하고 있다. 특히 미래의 꿈나무인 어린이와 청소년의 인구가 급격하게 줄고 있다. 조상들의 지혜와 혜안을 다시금 돌아봐야 할 안타까운 대목이다.

은진미륵 부처님! 코로나19로 모두가 힘들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에게 희망을 줄수 있도록 국가의 태평성대를 위해, 그리고 논산의 번영과 부활을 위해 기도합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 관촉사 일주문

사찰에 들어가는 첫 번째 문이다. 이 문을 경계로 문 밖을 속계(俗界)라 하고 문 안은 진계(眞界)라 한다. 일주문의 한 줄로 세운 기둥은 일심(一心)을 상징한다. 이 문을 들어서면 세속의 번뇌를 버리고 일심(一心)에 귀의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다음은 조선 중기 우리고장 연산출신 靜觀一禪(정관일선, 1533~1608) 스님의 시 한편을 소개한다. 

佛在爾心頭 (불재이심두)

부처가 네 마음에 있는데

時人向外求 (시인향외구)

세상 사람들은 밖에서 구하려하네

內懷無價寶 (내회무가보)

가격을 매길 수 없는 보배를 가졌지만

不識一生休 (불식일행휴)

알지 못하고 일생을 헛되게 보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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