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명 칼럼] 길은 멀어도 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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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명 칼럼] 길은 멀어도 내가 간다
  • 이기명 팩트TV 논설위원장
  • 승인 2021.01.11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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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대신 가주지 않는다

【팩트TV-이기명칼럼】힘들다. 숨이 턱에 찬다. 길 가 바위에 앉는다. 매주 오르는 북한산 등산길. 강제하는 것도 아닌데 비 오나 눈이 오나 일요일이면 어김없이 산행이다. 혼자다. 혼자서 무슨 재미냐고 하지만 혼자가 아니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편하다. 노래도 부르고 쉬고 싶으면 쉬고 오르고 싶으면 오르고 오르다 싫으면 내려가고.

이제는 아득한 기억의 끝자락이지만 북한산 정상에 올라 탁한 숨을 내쉬며 눈을 내리깔면 산 아래 존재들은 모두 ‘까불지 말라.’ 속으로 하는 소리다. 이 꼴 저 꼴 보지 않고 산속에서 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나만의 충족. 이제 다 사라졌다. 거기 나와 산만이 있다. 보람 있는 일에는 고통이 따른다. 고통이 있기에 더욱 보람이 있다. 이제 산도 멀어졌다. 글쓰기도 힘이 든다. 버티고 쓴다. 써야 한다. 힘들어도 내가 쓴다. 길은 멀어도 내가 간다.

 

■지도자의 길

모처럼 집안이 시끄럽다. 공휴일이라 손주들이 찾아왔다. 먹고 싶은 점심 메뉴를 물었다. 몇 놈 되지 않는데 저마다 의견이 다르다. 양보가 없다. 별수 없다. 내가 결정해야 한다. 무엇이 합리적인가. 어렵다. 근접한 타협안을 제시한다. 수용한다. 이것이 평화다. 지도자의 역량이다.

“한국 정치는 장자방이나 제갈공명이 와도 풀지를 못할 것이네. 결론을 내놓고 요지부동. 토론하면 무슨 소용이 있나.

51%의 승리라고 한다. 99대 98이면 99가 승리하는 것이다. 깨끗이 승복한다. 얼마나 멋진 승리인가. ‘무슨 소리. 한 점 차이야. 승복 못 해.’ 한국의 정치 현실이다. 그러니 나라가 이 꼴이지.

‘그런 줄 몰랐더니 자네 아주 꽉 막혔더군. 대책회의에서 왜 그렇게 반대를 하는가. 나한테는 찬성한다고 했잖아.’

‘그건 선생님한테죠. 괜히 찬성했다가 그 책임 어떻게 집니까.’

누가 책임을 지라고 하는가. 합의는 만장일치가 아니다. 한국전쟁 휴전회담이 열리고 있을 때, 이승만은 ‘휴전결사반대’를 외쳤다. 고등학생인 우리는 매일 휴전 결사반대를 외치며 시위했다. 물론 이승만 정권에서 시킨 것이다. 충정로에 있는 외신기자들 숙소 앞에서 우리는 ‘휴전 결사반대’를 외쳤다.

무장하고 휴가 나온 군 사병이 내뱉는다. ‘이 새끼들아 니들이 나가 싸워!’

여학생들이 손톱 밑을 면도칼로 깔작거려 피 할 방울 짜내서 백지에다 ‘휴전결사반대’라고 쓴다. 그걸 여론이란 옷을 입혀 기사를 만든다. 기자다.

그때 휴전이 이루어지지 않고 계속 싸웠다면 어찌 되었을까. 싸울 실력도 자신도 없었던 이승만의 허세. 이건 어설픈 지도자의 만용이었다. 언론도 휴전 반대다. 기자더러 나가 싸우라고 하니 “미쳤냐. 내가 왜 싸워.”

 

■무엇이 진실인가

생각과 말이 따로따로 노는 한국의 정치지도자들. 그들의 잘못으로 오물을 뒤집어쓰는 죄 없는 국민. 세상에서 제일 똑똑한 것이 자신들이라고 자부하는 기자들이 국민을 구해야 하지 않는가.

세 놈이 입을 맞추면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난다고 한다. 아니 셋이 아니라 혼자서라도 호랑이 세 마리가 아닌 악마를 한 트럭이라도 만들 수 있는 재주꾼이 언론이다. 기자다. 아니라고 부정할 양심이 있는가. 세상을 뒤집는 무서운 언론을 우리는 늘 옆에 두고 고통받는다.

이 땅의 독재를 뽑아버린 힘도 실은 언론이다. 국민이다. 그 때문에 불의한 자들은 언론을 두려워하고 언론을 매수하고 유혹한다. 오늘날 적폐언론의 대명사처럼 불리는 자칭 대형 언론을 비롯한 부패언론으로 지탄받는 가짜들은 검찰의 개혁보다도 법원의 부정보다도 가장 먼저 국민이 불태워 버릴 개혁의 대상이다.

모르는가. 안다. 알아도 너무 잘 안다. 담쟁이 넝쿨처럼 서로 얽히고설켜서 정치를 오염시키는 언론의 정화는 바로 언론인 자신들의 손으로 해야 한다. 자신이 찌른 가슴에 비수는 자신의 손으로 뽑아야 할 것이다.

(자료사진 - 신혁 기자)
(자료사진 - 신혁 기자)

■왜 정치를 하는가

자신들이 쓴 몇 줄의 기사가 썩은 세상을 온통 뒤집어 놓는 것을 보면서 얼마나 통쾌한가. 기사를 읽으면서 국민은 얼마나 기자를 존경하는가. 국회의원들이 스스로 탈당을 한다. 여·야를 막론하고 탈당하는 의원들을 보면서 만약에 언론이 없었다면 그들은 얼마나 당당 뻔뻔하게 의사당을 드나들고 있었을까.

이제 도리없이 세상은 바뀔 것이다. 검찰도 법원도 언론도 바뀔 것이다. 바뀌지 않으면 살아갈 수가 없을 것이다.

현명한 안목으로 넓고 길게 보아야 한다. 높은 산에 오르면 멀리 보인다. 오르기가 얼마나 힘이 드는가. 그래도 가야 할 길이다. 특히 지도자들은 모든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싫으면 지도자를 포기하고 정치 사기꾼이 돼라.

정치인은 험준한 산을 오르는 산악인과 같다. 힘이 들어도 올라야 한다. 자신들이 산을 오르는 모습을 누가 지켜보는가. 국민이다. 생활에 지치고 코로나 19에 시달리는 국민들은 간절한 소망으로 정치를 보고 있다. 아무리 험준해도 올라야 한다는 산악인의 결의를 국민들은 기원한다.

정치지도자들은 국민들의 비원을 외면하지 말라. 국민을 외면하면서 왜 정치를 하느냐. 국민의 눈이 자신들을 바라보며 존경을 보낼 때 그보다 더 큰 보람은 없다. 길이 멀고 험해도 가야 한다. 목숨보다 귀한 국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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