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택 칼럼] ‘착한 사람’과 ‘착하기만 한 사람’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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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 칼럼] ‘착한 사람’과 ‘착하기만 한 사람’은 다르다
  • 김용택 참교육이야기
  • 승인 2020.12.23 0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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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별별 사람들이 다 산다. 착한 사람, 정직한 사람, 순진한 사람, 어리석은 사람, 우직한 사람, 괴팍스러운 사람,... 고집불통, 이기적인 사람도 있고 할 말이 있어도 다 하지 않고 상대방의 인격이나 감정이 상하지 않게 배려해서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남의 마음에 상처를 주거나 말거나 할 말을 다 해야 속이 시원해 하는 사람도 있다. 원만한 일은 손해 보고 지나가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절대로 손해보지 않고 끝까지 따지는 사람도 있다.

어려운 사람을 보면 주머니를 털어 도와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남이야 죽든 살든 나만 살고 보자는 이기적인 사람도 있다. 원리원칙대로 줄을 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출세를 위해서라면 신념 따위야 헌신짝 팽개치듯 하는 배신자도 있다. 

착한 사람, 순수한 사람... 참 듣기 좋은 말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인정받고 존경받는 세상이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은 착하기만 하다’거나 ‘순진한 사람’은 남에게 이용을 당하거나 바보 취급을 받는다.

 

◈ 착하다는 말의 뜻

‘착하다’란 무슨 뜻일까? “몸가짐이 얌전하고 행동이 차분하여 일을 차근차근하고 무슨 일이든 불평 없이 척척 해내는 사람”을 착한 사람이라고 한다. 그런데 요즘에는 ‘착하다’는 말은 칭찬이 아니라 “남의 말을 잘 듣는 사람”처럼 취급당한다. 

또 “주관이 없는 사람” 혹은 “함부로 대해도 되는 사람”을 일컬어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남의 말을 잘 듣고, 주관이 없고, 함부로 대해도 되는 사람”이 착한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이 난장판이 된 세상에서 어떤 대접을 받을까?

학교는 학기가 끝나면 학업성적이 좋은 학생들에게 “품행이 방정하고 학업성적이 우수하여 이 상을 줌”이라는 상을 준다. 여기서 ‘방정하다’는 것은 ‘찬찬하지 못하고 몹시 경망스럽게 하는 말이나 행동’이라는 뜻과 ‘말이나 행동이 바르고 얌전하다’는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다.

‘품행이 방정하고 학업성적이 우수하다’에서 방정이란 후자를 뜻하는 말이다. 상장에 적힌 ‘방정하고’의 뜻은 긍정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하더라도 학교가 이런 학생을 모범생으로 길러내야 하는가?

“할 말이 있을 때 참고, 나서야 할 때 기다리며 남에게 싫은 소리 못하는 성격. 다들 놀 때도 자기 일은 물론, 남이 부탁한 일까지도 열심히 처리하며 아차 하면 남에게 이용도 당하는 사람” 이런 사람을 누가 좋아할까?

4차산업사회에는 순진한 사람, 착하기만 한 사람이 아니라 유능한 사람, 지혜로운 사람이 필요하다. 머릿속에 원리나 원칙을 많이 암기하고 있다고 해서 유능한 사람,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 착한 사람이 대접받는 세상인가

착한 사람이 대접받던 시대가 있었다. 농업사회, 그러니까 남을 해코지 하는 일이 없는 순수하고 착한 사람들이 사는 농업사회에서는 그랬다. 그래서 부모들은 자녀에게 착한 사람이 되라고 입버릇처럼 얘기하곤 했다. 순수한 것이 통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진화한 신자유주의 사회에서는 민주주의의 원리도 경제원리도 사라진 불법과 탈법, 변칙과 위선, 이기적인 인간들이 판을 치고 있다. 이런 세상에 착한 사람이란 돈벌이에 눈이 어두운 사람들에게 이용당하기 안성맞춤이다.

신약성서 산상수훈(마태복음 5장 39절)을 보면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 말씀은 약자는 강자에게 무조건 저항하지 말고 당하기만 하라는 뜻일까? 오른뺨을 때리고도 분이 풀리지 않아 못견디는 사람에게 계속 오른편과 왼편을 계속 돌려대 ‘분풀이 대상’이 되라는 뜻일까? 성서의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뺨을 돌려대라’는 것은 ‘오른편 뺨을 친 사람이 왼편 뺨을 돌려 댐으로서 자신의 행위를 부끄럽게 느끼도록 하라는 뜻이지 계속해서 맞으라는 뜻이 아니다.

착한 사람이 대접받지 못하는 세상에서 아이들을 어떻게 길러내야 할까? 우리 부모들은 사랑하는 자녀들이 이 막가파 세상, 가치혼란의 세상을 헤치고 나갈 수 있는 비법을 전수해 주고 있는가? 학교는 어떤가? 혹 원리원칙이나 가르쳐주고 착하기만 한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착한 사람이 대접받지 못한 세상에 부모나 학교가 길러내야 할 인간상은 착한 사람이 아니라 시비선악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로운 인간이다. 사랑하는 자녀들, 제자들이 가치혼란의 시대에 착하기만 한 사람으로 자라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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