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랑 칼럼] 위지즉모(圍地則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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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랑 칼럼] 위지즉모(圍地則謨)
  • 이정랑의 고전소통
  • 승인 2020.11.30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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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지(圍地)에서는 책략(策略)을 구사(驅使)한다.

비지(圮地-가기가 어려운 땅)에서는 집(군영)을 짓지 말 것이며, 위지(圍地)에서는 책략을 구사하고, 사지(死地)에서는 싸워야 한다. (손자병법 구변편)

이정랑 언론인 (중국고전 연구가)
이정랑 언론인 (중국고전 연구가)

들어가기에는 길이 좁고 막혀있으며, 돌아올 때는 우회해야 하며, 소수의 적이 다수의 아군을 공격할 수 있는 지형을 위지(圍地)라 한다. 따라서 산지(散地)에서는 싸우지 말아야 하고, 위지 에서는 기계(奇計)를 써서 빠져나와야 한다. 험하고 견고한 곳을, 등지고 있고 좁은 곳이 눈앞에 있는 지형을 위지 라고 한다. 위지 에서 아군은 출구를 스스로 막고 병사들로 하여 결사적으로 분전하게 해야 한다. (손자병법 구지편)

여기서 말하는 ‘위지‘란 진입로가 좁고 퇴로는 꼬불꼬불하고 멀어서 적이 소수의 병력으로도 많은 수의 아군을 공격할 수 있는 지형을 가리킨다. 이런 지형적 조건에서 작전할 때는 ’기병(奇兵)‘을 활용해야지 ’정병(正兵)‘은 적합하지 않으며, 속전속결로 끝내야지 지구전으로 가서는 안 된다. 수비하는 쪽은 흔히 매복을 사용하며, 공격하는 쪽은 임기응변을 많이 구사한다.

제갈량 하면 아낙네와 아이들까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이름난 책략가지만, 기산(祁山)에서 최후의 패배를 맛보고 오장원(五丈原)에서 파란만장한 일생을 마감하고 만다. 그런데 이 기산이야말로 병법에서 말하는 ‘위지’로서, 지키기에는 유리하지만 공격하기에는 불리하며 ‘변칙 공격’에는 유리하지만 ‘정공’에는 불리했다.

제갈량은 기계로 대처하자는 위연(魏延)의 건의를 물리치고 마속(馬謖)을 선봉장으로 삼아 양평관을 돌아 무도(武都)‧천수(天水)를 거쳐 기산에 이르렀다. 10만 촉군은 숭산(崇山)이라는 험준한 산길을 우직하게 행군하는 바람에 극도의 피로에 시달렸다.

그 사이에 위 군은 시간을 벌어 구덩이를 굳게 파고 보루를 쌓은 뒤 지칠 대로 지친 촉 군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속이 가정을 지키지 못하고 잃을 때까지도 제갈량은 이 작전이 가져다줄 뼈아픈 교훈을 실감하지 못했다. 제갈량은 그 뒤의 북벌에서도 험준한 산길을 피해 동쪽으로 돌아 적 후방 깊숙이 침투하는 작전을 취하지 않고 자신의 고집대로 우직스러운 공격만을 고수했다.

이는 제갈공명이 죽고 난 다음, 위의 진서장군(鎭西將軍) 등애(鄧艾)가 음평(陰平)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별안간 촉의 한가운데를 공격하여 촉 정권을 순식간에 무너뜨린 작전에 비하면 크게 손색이 난다. 삼국지를 지은 진수(陳壽)가 제갈량을 두고 “군대를 다스리는 데는 능숙, 했으나 기모(奇謨)가 짧았고, 백성을 다스리는 능력이 장수로서 계략을 구사하는 능력보다 나았다”고 평가한 것도 무리는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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