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훈 칼럼] 반드시 알아야 할 ‘미군 장갑차 SUV 추돌’ 사건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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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훈 칼럼] 반드시 알아야 할 ‘미군 장갑차 SUV 추돌’ 사건의 진실
  • 박명훈 주권연구소 연구원
  • 승인 2020.09.10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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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운전자 과실? 안전 조치는 미군이 어겼다

[주권연구소] 지난 8월 30일 늦은 9시 27분께 경기도 포천시, 주한미군 장갑차에 한국인이 탄 SUV(스포츠유틸리티) 차량이 부딪혔다. 한국인 운전자와 탑승자 4명이 타고 있는 SUV 자동차는 중무장한 미군 장갑차에 의해 그야말로 처참하게 으스러졌다.

​사고 당시 심정지 상태였던 한국인 4명은 병원으로 이송돼 심폐소생술을 받았지만 끝내 모두 숨졌다. 경찰조사에 따르면 해당 장갑차는 미 2사단 210포병여단 소속 인원 수송용 장갑차로, 포천시 미8군 로드리게스 사격장(영평사격장) 주변 국도를 느린 속도로 이동하고 있던 중이었다고 한다.

​현재 주요 언론은 이 사건을 한국인이 주위를 제대로 살피지 않은 “운전자 과실”로 결론 내리려는 모양새다. 심지어 사건 초기 경찰은 “운전자의 전방주시 태만”이라며 한국인의 과실을 단정하는 이상한 태도를 보였다.

그런데 이 사건을 한국인 운전자의 잘못으로 규정하기에는 석연찮은 점들이 너무나도 많다. 당장 그 늦은 밤에 보호색으로 위장한 미군 장갑차는 왜 일반 국도를 호위차량도 없이 활보했는지부터, 미군 측이 사전에 주민들에게 국도 이용을 알리긴 했는지, 사건의 희생자인 한국인들이 모두 사망한 상황에서 미군 측이 숨기고 있는 잘못은 없었는지 등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포천 미군 장갑차 추돌 사건’과 관련해 누리꾼들은 인터넷 상에서 이런 의견을 주고받고 있다.

​“장갑차는 밤에 더 안보였을 텐데. (한국인 탑승자들이) 모두 돌아가셔서 누명을 쓰셨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작전 중도 아닌데 칠흑같이 어두운 시골 공도에서 위장 도색한 장갑차가 미등도 켜지 않고 후미 경계차량도 없었다면 문제가 될 듯.”

​“장갑차 선탑자(군대에서 운전자와 동승해 운전을 통제하고 감독하는 사람)가 장갑차 바깥 상황을 보지 않은 것 같다.”

​이러한 여론을 바탕으로 경위를 쭉 따라가다 보면 사건의 진실은 한국인의 잘못이 아닌, ‘초보적 안전 조치’를 어긴 미군 측의 과실-범죄로 모아진다.

​공개된 현장사진만으로도 사건이 어떻게 발생했는지 어렵지 않게 추정해 볼 수 있다. 미군 장갑차에는 어두컴컴한 위장 도색(보호색)이 칠해져있고 한국인이 탑승한 SUV 차량은 차체 앞부분이 심하게 찌그러져 형체조차 알아보기 어렵다. 반면 장갑차는 뒷부분이 다소 흠집만 난 것을 빼면 거의 멀쩡하다.

​이를 근거로 추정한다면 한국인 차량이 어두운 밤길에 위장까지 돼있는 장갑차를 미처 발견하지 못했고, 속도를 줄이지 못해 그대로 부딪혔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되살아나는 효순·미선 사건, 되풀이되는 주한미군 범죄

​돌이켜보면 포천 미군 장갑차 추돌 사건은 18년 전 경기 양주군에서 발생한 ‘신효순·심미선 사건’과 판박이다. 무엇보다 우리 국민이 포천 장갑차 추돌 사건과 ‘같은 미 2사단 소속 장갑차’에 의해 희생됐다는 점에서 그렇다. 신효순·심미선 사건의 정확한 명칭은 ‘주한미군 장갑차에 의한 중학생 압사 사건’이다.

​지난 2002년 6월 13일, 미군 장갑차가 폭이 좁은 편도 1차선 도로로 들어섰다. 장갑차의 덩치는 길 폭을 넘어설 만큼 컸지만 전방(앞)이나 후미(뒤)에 호위차량을 두지 않았다. 결국 갓길로 들어선 장갑차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 갓길을 걸어가던 신효순·심미선 두 중학생을 그대로 깔아뭉갰다. 두 학생의 사인은 두부 등 신체손상에 따른 ‘즉사’였다.

​당시 미군은 “단순 교통사고다. 누구도 책임질 만한 과실이 없다”라며 사건을 틀어막으려 했다. 하지만 이렇다 할 인도가 없는 농촌마을에서 주민들이 갓길을 인도로 이용해왔고, 장갑차가 이를 주의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미군 측의 과실임이 명백했다. ‘가해자 처벌’과 ‘주한미군 철수’를 외치는 우리 국민의 분노 여론이 심상치 않자 미군은 뒤늦게 사건 재발 방지책을 내놨다. 한미 군 당국이 약속한 훈련조치 합의서에는 이런 내용이 담겨있다.

​“모든 전술차량에 대해 운전자의 시야를 저해하는 요소가 있는 경우 시야 최대확보, 차량운행을 보조하도록 적절한 통신장비 및 탑승자 추가, 선두 및 후미에 호송차량 동반 등 실시.”

​“1대 이상 궤도차량, 4대 이상 차륜차량 이동시 72시간 전 통보, 통보된 사항은 한국군과 해당 지자체를 통해 해당 지역 주민들에게 전달.”

​미군이 위 규정을 지키지 않으면 한국인 운전자 과실과는 상관없이 앞으로도 ‘미군에 의한 한국인 사망’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 미군의 몹시도 뻔뻔한 태도를 보건대, 미군은 해당 규정을 따를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신효순·심미선 사건으로 미국이 주한미군의 재판권을 쥔 한미SOFA(주한미군지위협정)의 불평등한 ‘치외법권’도 부각됐다. 법무부는 여론에 따라 미국 측에 ‘재판권 포기’를 요청했지만 단칼에 거부당했다.

미군 군사법원 재판부는 “동 사고가 공무 중에 일어난 사고이기에 재판권이 미국에 있으며, 이제껏 미국이 1차적 재판권을 포기한 전례가 없다”라고 법무부에 통보했다. 이뿐만 아니라 미 군사법원은 사고를 낸 장갑차 운전병과 통신병에게 “공무 수행 중 벌어진 일”이라며 무죄판결을 내렸다. 가해자는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고 반성 없이 미국으로 돌아갔다.

​이와 관련해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은 신효순·심미선 사건의 ‘역사적 배경’으로 “주한미군은 인성 교육이나 한미간 문화 차이 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데다 주둔군으로서 한국인에 대한 존중의 마음이 부족해 사고의 위험이 항상 잠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라고 지적한다.

​다시 2020년 8월 30일, 포천 미군 장갑차 추돌 사건으로 시선을 돌려보자. 주한미군 2사단은 신효순·심미선 사건에서 합의한 위 규정을 모조리 어겼다. 미군은 장갑차의 전방과 후미에 주위를 살피는 호위차량을 두지 않았고, 포천시에도 장갑차 이동을 고지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따라서 포천 미군 장갑차 추돌 사건은 우리와의 합의를 어긴 미군 측의 잘못임이 명확하다. 지난 7일, 최명숙 포천시 ‘사격장 등 군 관련시설 범시민대책위원회’ 위원장은 미군 장갑차 추돌 사고 재발 방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에서 미국 측의 사과를 촉구하며 이렇게 소리 높였다.

​“2002년 양주에서 발생한 효순·미선 사망 사고 이후 최악의 미군 관련 인재가 포천에서도 발생했다. 더 이상 미군으로 인한 인명 사고에 대해 침묵할 수 없으며, 인간 생명의 존중과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해 정부와 미군 측에 15만 포천시민의 강력한 경고를 전하고자 한다.”

​이렇듯 미국에 책임을 묻는 민심은 확고하다. 반면 수사를 맡은 ‘한국 경찰’은 미군에서 자체 조사를 하겠다고 했으니 보내오는 자료를 보고 미군 소환 조사도 검토하겠다며 수사를 미적대고 있다. 정부에서는 이 사건을 국가적 사안으로 엄중히 보고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경찰은 국내법에 따라 미국 눈치 보지 말고 해당 사건을 철저히 제대로 수사해야 한다.

​미군 측은 표면적으로는 “경찰 조사에 적극 협력하고 있다. 사고 희생자와 유가족을 위해 해당지역에서 훈련을 중단한 상태”라며 짐짓 ‘자숙’하는 듯 보이지만 한미SOFA의 치외법권이 고스란히 살아있다. 이대로라면 미군이 책임을 지지 않은 신효순·심미선 사건과 같은 결과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동안 미군은 우리 땅에서 어떤 범죄든지 잘못을 회피하며 미꾸라지마냥 빠져나갔다. 가해자는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죄의식도 없이 미국으로 돌아가기 일쑤였다. 이번이야말로 반드시 국내법에 따라 미군의 잘못-과실을 명명백백하게 밝혀내고 ‘가해자 미국’에 응당한 처벌을 내려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한국인 희생자’들을 기릴 수 있는 최소한의 조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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