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훈 칼럼] 민주주의의 발전이 자주통일운동을 촉진한다
상태바
[박명훈 칼럼] 민주주의의 발전이 자주통일운동을 촉진한다
  • 박명훈 주권연구소 연구원
  • 승인 2020.06.30 07: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987 이후 본격화된 민주주의와 자주통일운동의 결합

[주권연구소] 영화 <1987>은 이한열 열사를 비롯한 민중들의 목숨을 건 싸움이 이 땅의 민주주의를 일궈냈음을 잘 보여준다. 평생을 이 땅의 참된 민주주의와 외세 개입 없는 조국통일을 위해 헌신한 투사, 문익환 목사가 등장하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1987년은 민주주의와 자주통일운동이 하나로 결합된 시대였다.

​1987년 6월민주항쟁 이후, 아쉽게도 세상은 단번에 바뀌지는 않았다. 1990년 전국의 대학생들이 “이땅이 뉘땅인데 오도가도 못하느냐”,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만나자 판문점에서”를 구호로 1차 범민족대회를 열었다. 이에 노태우 정권은 행사를 불허하며 대대적으로 탄압했다. 이는 한반도의 불안으로 이득을 취하려는 미국의 이해관계와 정확히 일치한 것이었다.

​이어진 김영삼 정권 역시 민주주의를 억누르고 남북관계를 정권의 입맛에 맞게 이용했다. 특히 김영삼 대통령이 미국에서 건너온 ‘북한 붕괴론’을 들이밀면서 남북관계를 틀어버렸다. 결국 이 정권 들어 남북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고 한반도에는 전운이 감돌았다. 군사독재정권을 그대로 넘겨받은 노태우, 김영삼 정권 시기 민주주의와 통일운동은 탄압받았고 대한민국은 상시 긴장상태에 놓였다.

​그러다 1998년, 김대중 정부 출범 뒤 민주주의와 통일운동은 반전한다. 물론 김대중 정부는 자민련과 손을 잡고 노동운동을 탄압하는 등 부족함은 있었지만, 그래도 김영삼 정권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오랜 세월 재야에서 민주주의를 외쳐온 김대중 대통령은 ‘외세 개입 없는 민족통일’이라는 철학이 확고했고, 이것이 각계각층의 통일운동과 더해지며 남북관계를 활짝 열어젖혔다.

​특히 2000년 남북 정상이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라고 명시한 6.15공동선언을 합의하면서 통일물결은 한반도 전역으로 확산된다. 당시를 평가하자면 바야흐로 50여년 분단세월을 뚫고 민주주의와 자주통일이 하나로 만났다고 할 만하다.

​6.15공동선언의 결과로 금강산관광, 민간-당국 간 협력교류의 대문이 활짝 열리면서 한반도는 순식간에 통일 분위기로 줄달음치게 된다. TV와 신문을 보면서 남녘의 많은 이들 누구나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을 마음속에서 그렸다. 김대중 정부가 남북 민간협력을 독려하는 가운데 통일의 싹이 커나간 것이다.

​2002년 금강산에서 열린 ‘6.15선언 2주년 민족통일대축전’에는 노동자, 여성, 학술 부문, 정부 당국 등 각계각층이 북녘을 찾았다. 남녘과 북녘의 모두는 “민족대단결”을 기치로 남녀노소 어울려 기쁨을 나눴다. 당시 찍은 사진을 직접 보면 환희가 지금 당장 사진 바깥으로 튀어나올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다.

◆노무현 정부…국민 속으로 번진 문익환의 꿈

​2002년 6월 12일, 미군 장갑차에 깔려 살해당한 여중생 ‘효순, 미선’을 추모하는 촛불집회 속에서 노무현 열풍이 불었다. 당선 가능성이 거의 없다던 노무현은 국민 곁에 다가서는 소탈함과 화끈함으로 ‘노사모 열풍’을 불러일으키더니 대통령에 당선됐다. 대통령 당선자 노무현의 일성은 “미국에 할 말은 하겠다”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앞서 소개드린 문익환 목사와도 연이 깊다. 노무현 변호사가 지난날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감돼 재판을 받던 문익한 목사의 변호를 맡았기 때문이다. 당시 변호인 노무현은 문익환 목사를 접견하며 “통일 지향하는 민주주의가 민주주의”, “우리 민족의 모든 문제의 근원은 분단에 있다”라는 문익환 목사의 철학을 직접 들었다. 대통령이 된 노무현이 미국과 통일 문제에 집중한 것도 분명 이와 큰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노무현 정부의 등장, 정확히 말하자면 국민이 선택한 참여정부의 출범은 민주주의와 통일의식을 훨씬 가속화시켰다. 2005년 기준 금강산관광 누적 인원은 100만 명을 넘었고, 2007년 개성공단이 가동돼 민족경제의 유무상통을 열었다. 미국은 우리 민족이 펼쳐낸 통일마당을 마뜩찮아 했지만, 한번 둑 터진 남북관계를 가로막을 뾰족한 방도가 없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통일열기는 가가호호 퍼져나갔다. 노무현 정부 당시에는 각 마을 별로 통일한마당 행사도 있었다. 통일운동과 아무런 연이 없는 아파트 부녀회장이 통일행사에 참가하는 등 국민 누구나 ‘일상 속에서의 작은 통일’을 실천해 나가던 값진 시기였다.

​남과 북이 함께 하는 민족행사로 세상은 온통 왁자지껄했다. 금강산관광이 본격화되면서 각 가족들 사이에서는 “심심한데 금강산이나 가볼까?”란 말이 절로 나왔다. 대학교 측이 학생회의 통일사업을 적극 지원하는 이색적인 풍경도 펼쳐졌다. 학생회가 금강산관광에 함께 갈 학우들을 모집하고, 학교 측이 여기에 비용을 대며 편의를 제공하는 화기애애한 모습도 역사에에 남았다. 누구나 할 것 없이 통일운동의 주체로서 활약할 수 있던 날들이었다.

​2005년 광복절, 서울에서는 8.15민족대축전이 열렸다. 그때는 인천-평양 간 직통 하늘길로 북측 대표단 160여 명이 서울을 방문했다. 여기에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개막식으로 열린 통일축구 대회에 남측 국민 6만 여명이 운집했다. 온 겨레가 “조국통일”, “오 통일 코리아”로 떼창을 외치며 하나 되는 장면은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2007년 10월,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평양에서 10.4선언을 체결했다. 남북 정상이 온 겨레 앞에서 “상호 존중과 신뢰의 남북관계”, “백두산 관광 실시 등 사회문화 분야의 교류와 협력 발전”을 약속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퇴임을 몇 달 앞둔 이 시기 통일열망은 드높았다. “이제는 백두산 가자!”라는 흥겨운 들썩임 속에서 남북은 머잖아 하나 된 통일국가로 도약할 듯했다.

◆이명박근혜 지나 북녘으로…촛불혁명과 통일의 꽃물결

​이명박근혜 정권 때는 민주주의, 자주통일운동이 모든 측면에서 후퇴한 암흑기였다.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 초기부터 광우병이 의심되는 미국산 소고기 수입 결정을 내렸고, 그에 따른 대대적인 촛불시위가 일어났다. 그뿐만 아니라 이명박 정권은 2010년 5.24 조치로 금강산관광을 중단시켰다. 개성공단 내에서도 공단이 언제 중단돼도 이상하지 않을 일촉즉발의 상황이 벌어졌다. 이 땅의 민주주의와 자주통일운동은 그야말로 살얼음판을 걷고 있었다.

​뒤이은 박근혜 정권은 그나마 남아있던 살얼음판을 와장창 깨버렸다. 최순실이 국정에 깊숙이 개입해 국무회의 절차를 무시하고 2016년, 개성공단을 일방적으로 폐쇄했다. 박근혜 정권 당시에는 통일운동에 우호적이던 대학교 측의 태도도 적대적으로 돌변했다. 학생처는 예전과 다르게 통일사업에 나선 학생회를 가로막고 나섰다.

​이렇듯 이명박근혜 정권 시기, 지난 9년은 민주주의와 함께 통일시계가 거꾸로 되돌아간 끔찍한 시절이었다.

​남북관계의 분위기가 다시 반전된 건 국민이 촛불혁명을 통해 박근혜를 쫓아내고,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고 나서였다. 특히 2018년 초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신년사와 북측의 평창겨울올림픽 참가가 극적인 계기가 됐다. 이를 계기로 남측, 북측 공동대표단이 함께 한반도기를 들고 평창에서 행진했다. 90세가 넘은 북측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공동행진을 보며 두 손 번쩍 들고 눈물짓는 모습은 남측의 우리에게 뭉클한 인상을 남겼다.

​평창올림픽의 거대한 환호와 함께 이명박근혜 정권 시기 꽉 막혔던 남북관계, 통일운동도 해금됐다. 대학생들이 페어 스케이팅 경기에 참가한 북측 렴대옥 선수를 응원하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어 세간의 화제가 됐다.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북한 운동선수 팬클럽’이라니 이명박근혜 정권 하에서는 생각조차 못했을 일이다.

​또한 현송월 단장이 이끄는 삼지연관현악단이 남녘 서울, 강릉을 찾아 공연했다. 추첨에서 뽑혀 공연을 본 가족, 친구들이 삼지연관현악단의 멋진 공연 후기를 사진과 글에 담아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렸다. 아쉽게 삼지연관현악단을 보지 못한 사람들도 이런 분위기 속에서 ‘내가 뭘 하나라도 더 할 수 있을까’ 강구했다. 누구나 통일의 전령사가 됐던 지난날의 통일열기가 다시금 돌아온 것이다.

​이명박근혜 정권이 ‘북한과 가깝다’며 한사코 거부해오던 조선적 동포들의 남녘 입국도 허용됐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선총련) 산하 청년 조직 조청 관계자들도 분단 70여년 만에 처음으로 남측을 찾았다. 이들은 남측 청년학생들과 ‘코리아팀’으로 아이스하키 경기에 나선 우리 선수들을 열렬히 응원했다. 또 얼싸안고 서로의 이름을 다정히 부르며 술자리를 만끽했다. 가혹했던 반민주주의-반통일시대를 단숨에 뛰어넘은 민족사적 대사건이었다.

​평창올림픽 이후 바다 건너 일본에도 통일바람이 불었다. 도쿄 시내 문부과학성 앞에서 동포 학생들이 아베 정권의 조선학교·민족교육 탄압을 규탄하는 금요행동을 남측 언론사가 취재했다. 남측, 북측 청년학생들이 10여 년 만에 마주한 술자리에서는 ‘촛불혁명에 따른 남녘의 정권 교체로 이번 만남이 가능하게 됐다’며 벅찬 감동이 터져 나왔다.

​2018년도에는 남북 정상회담이 남측·북측 판문점, 평양에서 3차례나 있었다. 같은 해 9월 19일,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의 배려로 15만 평양 시민 앞에서 “우리민족은 5천년을 함께 살았고, 70년을 떨어져 살았습니다”라고 말했고 세계가 그 순간을 가슴 벅차게 지켜봤다. 평창올림픽을 넘어 4.27 판문점선언과 9.19 평양공동선언으로, 통일의 숨결이 넘실넘실 온 겨레로 뻗어나갔다.

​남측 각계각층에서도 전례 없던 통일훈풍이 불었다.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방문을 환영하는 꽃물결 실천단, 판문점선언과 평양공동선언 이행을 촉구하는 ‘백두칭송위원회’의 등장도 이명박근혜 정권 때는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노태우, 김영삼 정권이 그랬듯 이명박근혜 정권이었다면 대대적인 탄압과 수사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그러지 않았고 갖가지 통일행사는 적잖은 호응을 받았다.

◆전망과 과제

​비록 최근 들어 남북관계는 위기에 빠졌지만, 이 국면에서도 국민은 한미워킹그룹으로 남북관계를 가로막고 민족자주를 깨트리는 미국을 정확히 겨냥하고 있다. 이제는 시민사회 각계각층은 물론 여당 여기저기에서 미국 규탄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미국의 본질을 꿰뚫는 이러한 움직임은 전례 없는 일이다.

​돌아보면 현재 한반도 정세는 지난 총선에서 미래통합당이 역사적 참패를 당하고 진보민주진영이 190석 가까이 얻어 대승한 결과와 맞닿아 있다. 국민은 대북 적대정책 운운하고 미국에 붙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깨트리려는 반통일 분단적폐세력을 철저히 심판했다.

​시나브로 이 땅의 민주주의와 자주통일을 염원하는 위대한 국민이 국민주권시대를 주도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발전과 자주통일운동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상승효과를 일으키고 있음은 자명하다. 국민은 정확히 시대를 읽고 민주주의와 자주통일운동에 나서고 있다.

​국민이 앞장서고 정치가 이러한 국민의 여망에 철저히 복무할 때야말로 한반도 새 역사의 장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