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종상 칼럼] 미국의 쇠락과 한국의 기회
상태바
[권종상 칼럼] 미국의 쇠락과 한국의 기회
  • 권종상 재미교포
  • 승인 2020.05.16 08: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애틀이라는 도시는 미국이 세계 제 2차대전과 태평양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발판을 만들어 낸 도시 중 하나입니다. 지금도 시애틀 남쪽의 SODO 라고 불리우는 지역엔 시애틀이 공업도시라는 것을 알려주는 흔적들이 가득합니다. 세계대전 중엔 어마어마한 양의 비행기가 이곳의 보잉 공장에서 만들어졌으며 군함의 건조도 이곳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름다운 도시 이미지와는 다르게 시애틀과 워싱턴 주는 무기 제조에 있어서, 그리고 군대의 밀집도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 도시였습니다. 이곳에서 소수 민족들이 다른 지역보다 비교적 차별을 덜 받은 것도 세계대전과 냉전을 거치며 방산업 쪽에서 근무할 인력이 터무니없이 부족해지자 소수민족에게까지 고용을 터 준 역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미국 전체가 신자유주의 체제 확립 이후 공장이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의 굴뚝 산업들은 대부분 해외로 빠져나갔고, 제조업이 빠져나간 자리는 서비스업, 금융업 등이 메꿨습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더 이상 미국산 TV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삼성, LG, 소니 등의 제품들만 볼 수 있을 뿐이지요. 미국 브랜드로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제니스는 1995년 LG에 인수돼 버렸습니다.

그런 게 한두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일상용품은 대부분 중국제로 바뀐 지 오래입니다. 미국 사람들이 입고 있는 옷의 대부분은 중국제일 것이고, 신발은 대부분 월남제라고 봐도 틀리지 않을 겁니다. 이런 미국의 산업구조의 기형성은 이번에 코로나바이러스 사태에서 그 취약점이 확연하게 드러나 버렸습니다.

세계 제1의 마스크 브랜드는 3M, 두 번째는 허니웰이라고 하지요. 둘 다 미국 기업입니다. 그런데 미국 안엔 이 마스크를 생산하는 공장이 없었습니다. 캐나다에 공장들을 두고 있었지요. 생산 시설이 없는 상태에서 갑자기 마스크의 수요가 늘어나자 트럼프는 미국 기업에서 생산된 마스크를 반출하지 못하도록 했지만, 문제는 이들의 생산 시설이 자국내에 없었다는 겁니다. 때문에 미국은 마스크 해적질을 시작했고, 최근엔 한국에서 몇백만 장의 마스크를 지원받기로 한 상태지요.

돈이 아무리 많아도 시장에 식료품이 떨어지면 사 먹을 수 없지요. 식당 가서 밥을 먹고 싶어도 아직도 식당의 영업을 모두 강제로 중단하고 있는 이곳에서 이제 마켓에서 신선 야채와 고기를 구할 수 없는 이런 상태의 미국, 그리고 여기에 자국 내에 어지간한 생활용품 생산 공장이 없다는 현실은 미국을 더욱 깊은 나락을 빠뜨리고 있는 셈입니다.

이런 상태이니 트럼프는 외국에 나가 있는 미국의 생산 시설들을 다시 불러들이겠다는 정책을 시작했지만, 생산비용의 증가라는 부담을 떠안기 싫은 기업들과 정부와는 마찰이 있을 수 밖에 없고, 지금껏 신자유주의 정책의 단물만 빨아먹고 살았던 미국 기업들은 이미 생산 능력을 잃고 대신 스스로가 크레딧카드 발급 회사로 변해 버렸기에 최신의 기술을 습득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미국 최고의 자동차 회사였던 GM은 자사의 이윤을 대부분 차를 팔 때 내 주는 신용카드로 벌어들이고 있었고, 이자 장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대가들을 한 번 제대로 세게 맞았던 것이 지난번 서브프라임 사태 때였지요. 결국 미국 정부는 울며 겨자 먹기로 이 기업들을 어마어마한 공적 자금을 들여 살려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나마 미국 내의 '생산 시설'이란 이런 것들밖엔 없었으니까요.

아무튼, 이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는 미국인들로 하여금 2차 산업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노동 환경 아래서 미국이 다시 제대로 공업 생산국가로 돌아올 수 있을까요. 아마 할 수는 있겠지요. 그러나 자국의 노동자들에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제대로 제공하지 않는 이상, 미국이 제대로 공업국가로 돌아올 수는 없을 겁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체제를 갑자기 바꿔낼 수 있을까요. 이곳에서 직접 생산을 해 낸다는 것은 결국 지금까지 중국에서 생산해 온 저렴한 상품들을 물쓰듯 써대던 미국의 경제 체제가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뜻하는데, 그게 과연 얼마나 현실성이 있을까요. 제국은 이런 식으로 저물고 있군요.

이런 모든 것이 한국에게 온 기회의 단면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이미 우리는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를 통해 국가 브랜드를 상승시켰고 한국 상품들은 이곳에서 지금 고가에 팔리고 있는 것을 봅니다. 작게는 코스트코에서 팔리고 있는 라면이나 김 같은 것에서부터, 성조기와 태극기를 반반씩 디자인해 넣은 미국산 마스크들이라던지, 지금은 일본 차보다도 더 비싸게 팔리지만 그래도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현대와 기아의 자동차라던지.

방역 정책 뿐 아니라 노동 정책도, 그리고 긴급재난지원금으로 인해 촉발된 기본소득의 논의까지, 지금의 한국은 세계를 이끄는 국가로서 확실히 자리매김할 수 있는 내적 요인과 외적 요인을 모두 갖추게 된 것 같습니다. 지금의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대한민국이 확실히 비상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우리 안에서도 고쳐야 할 것들은 고치고, 노동자들이 신나게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고, 빈부 격차를 줄이는 등 몇 가지만 우리가 앞장선다면 아마 대한민국은 신자유주의를 가장 앞장서서 무너뜨리고 더 많은 이들이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모범을 보이는 선진국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남북간 평화 공존을 통한 새로운 시장 개척과 남북철도의 연결, 그리고 이것을 통해 유럽까지 관통하는 물류 혁명까지 따라준다면… 아, 미국 걱정을 하다가 갑자기 국뽕이 차오릅니다.

시애틀에서…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