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진술서] 미대사관저 월담 시위 학생들 선고 공판 29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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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진술서] 미대사관저 월담 시위 학생들 선고 공판 29일에
  •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 승인 2020.05.0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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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시보] 지난해 10월 18일 해리 해리스 대사가 방위비분담금 인상 압박에 항의해 미 대사관저 월담 투쟁으로 구속된 학생들의 선고 공판이 오는 29일 열린다. 

사진출처 / 오마이뉴스
사진출처 / 오마이뉴스

4명의 구속 학생 중에서 김유진 학생이 보석으로 석방되었고, 현재 김수형, 김재영, 이상혁 학생은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다.

지난 22일에 진행된 결심 공판에서 검사 측은 김수형 학생은 징역 2년, 김재영 학생은 징역 2년 6개월, 이상혁 학생은 징역 2년, 보석으로 석방된 김유진 학생은 징역 1년 6개월을 구형했다.

선고 공판은 29일(수요일) 오전 11시 서울중앙지법 서관 508호에서 열린다.

아래는 학생들의 최후진술서 전문이다.

<김수형 학생>

얼마 전이었던 4월 16일, 달력의 날짜를 확인하자마자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어느덧 세월호참사가 발생한 지 6년이란 세월이 흐른 것입니다. 2014년 4월, 그해 봄은 보잘것없는 저의 많은 부분을 바꿔놓았습니다.

입시 공부하기 바빴던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던 저는 세월호참사를 목격하며 국민의 생명을 천금같이 여기고 보호해야 할 국가의 총체적 부재라는 충격적인 참상을 마주했습니다.

정권의 무능과 부패를 방조한 책임이 얼마나 뼈아픈지, 또 나와 내 가족과 다름없는 우리 국민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다시 한번 가슴 깊이 새겼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왜 항상 국민의 삶은 가진 자들의 횡포에 짓밟혀야만 하는가, 왜 야만과 탐욕에 찌든 자들이 권력이란 칼을 쥐고, 없는 이들을 약탈하며 사지로 내모는 참극이 반복될 수밖에 없는가를 되물어야 했습니다.

다시는 이런 참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모두가 평화 속에서 행복을 영위할 수 있는 평범한 일상이 가능한 사회를 만들고 지켜나가는 것이 남은 자의 책무라 여겼기에 저는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공부하기로 다짐했습니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내 삶은 어떤 의미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직시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렇게 대한민국의 역사를 돌아보며 저는 크게 두 가지 교훈을 얻게 되었습니다.

첫째로, ‘동맹’이란 두 글자에 가려져 있던 미국과 일본의 실체를 똑똑히 마주했고, 이들이 얼마나 우리 민중에게 있어 악덕 무도한 존재였는지를 깨닫게 됐습니다.

일제강점기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을 비롯해 자신들의 침략전쟁을 위해서 그 어떤 획책도 마다하지 않고 조선인들의 삶과 정신을 송두리째 뽑아버리려 한 일본, 뒤이어 한반도 이남을 점령한다, 선포하며 이 땅 위에 성조기를 내다 꽂은 미군정은 자신들의 동북아 패권을 관철하기 위해서 제주 4·3, 한국전쟁 등지에서 외세에 반대하는 민중들과 무고한 민간인들을 잔인하게 학살해왔습니다.

미국은 언제나 자신에게 충성하는 꼭두각시 정권을 내세우며 대한민국을 속국 취급했고, 그 과정에서 우리 국민의 삶은 철저히 소외당했습니다. 더불어, 개인의 영달을 위해 나라를 팔아먹고 강대국에 영합하는 이들의 손아귀에 대한민국의 존엄과 자주성은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습니다.

제가 느낀 두 번째 교훈은 이러한 외세의 폭압과 만행, 독재정권의 횡포에도 불구하고 굴함 없이 일어나 당당히 맞서 싸운 국민들의 투철한 기상과 정신이 있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대한민국 헌법도 3·1운동과 4·19를 통해 불의에 항거한 저항정신을 계승한다 명시하고 있듯, 우리나라가 독재와 폭력, 외세의 억압에 맞서 투쟁한 민중들의 피땀으로 일궈졌단 사실을 부정할 수 있는 이는 없습니다. 부당한 것에 대항하여 승리를 쟁취하고 그로 인해 사회가 진일보하는 과정은 더없이 귀중한 역사적, 민주적 유산이기에 그들의 저항정신은 늘 우리 곁에 남아있습니다.

4·19, 5·18을 비롯해 대한민국 역사의 격변점엔 언제나 청년학생들의 열띤 투쟁이 자리 잡고 있었듯 저 또한 민주선열들이 살아 숨 쉬던 이 땅에서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는 사람이 되리라 다짐했습니다.

병든 사회의 모순과 이를 강고히 유지시키려는 강대국의 횡포를 나의 안위만을 바라보며 모른 채 방관하지 않고, 국가의 자주와 존엄성을 지켜내는 국민이 되자, 민주공화국의 주인인 국민으로서 당연한 권리를 행사하며 당당히 목소리를 내자고 제 자신과 약속한 것입니다.

그렇게 저는 대한민국에서 총독 행세를 하며 주권 침해적 망발을 일삼는 해리 해리스 주한 미대사에게 전 국민적인 반대의 목소리를 전달하고자 미 대사관저 항의 방문을 진행했습니다. 저는 한반도에서 36년간 온갖 불법과 수탈을 자행했던 전범기업 미쓰비시 중공업의 후신이 피해자인 한국민에 대한 사죄도 없이 뻔뻔하게 서울 한복판에서 경제활동을 하고 있단 사실을 국민으로서 납득할 수 없었고, 이에 강제징용 배상판결 이행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미쓰비시 항의 방문을 진행했습니다.

저는 대한민국의 근간인 민주주의를 부정하며 5·18 정신과 가치를 폄훼하려 드는 파렴치한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망언을 규탄하고자 기자회견에 참석하러 갔습니다. 이는 모두 부족하나마 나라와 민족을 위해 떨쳐나선 과거 민주선열들의 굳센 기개와 투지를 본받아 대한민국의 국익과 주권을 수호하고자 했던 행동이었습니다.

언제까지 우리나라는 강대국 사이에서 이리저리 치이며 약소국이라는 이름으로 남아야 합니까? 지긋지긋한 사대와 굴종이 뿌리내린 척박한 땅에서 우리 국민의 삶은 메마르고 팍팍해질 뿐입니다. 아닌 것엔 아니라고 당당히 이야기하고, 그릇된 사회의 부조리를 올바르게 고쳐나가는 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학생의 사명이라 저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국민이 권력을 쥔 강자에게 맞서 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행동하는 것’뿐 이기에 불의한 횡포에 맞서 행동한 저는 제 양심과 역사 앞에 떳떳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나와 있습니다.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아픈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함께 이야기하고, 더 나은 사회에 기여하며 살아가는 대학생이자 한 사람의 국민이고 싶습니다. 재판부의 정의롭고 현명한 판결을 기대합니다. 이상입니다.

<김재영 학생>

외세에 나라를 빼앗긴 치욕의 역사를 통해서 독재자, 학살자에 의해 민주가 짓밟힌 오욕의 역사를 통해서 우리 국민들은 자주성, 우리의 주권을 지키는 일이 목숨보다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국민들은 자신의 주권이 법전에 쓰여 있다고 저절로 지켜지기를 앉아서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학살당하고, 고문당하고, 수년간 옥살이를 할지라도 당당히 맞서 자주독립과 민주주의를 쟁취했습니다. 당시 법정은 이들에게 유죄를 선고했지만 역사의 평가는 다릅니다. 국민주권을 나날이 키워온 이 승리의 역사, 연장선에 저희의 항의행동도 있습니다.

우리의 주권을 지키는 일은 여전히 시대적 과제입니다. 국민을 무시하는 정치 세력과 패권적 강대국들은 번번이 이 나라 주인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미래통합당에 맞서, 전범 기업 미쓰비시에 맞서, 우리나라를 식민지·ATM기 취급하는 미국에 맞서 저희는 주권을 지키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저들은 왜 우리 국민이 분노하는지도 그 심각성도 알려 하지 않았습니다. 세월호, 5·18 망언으로 국민의 분노를 샀던 자유한국당은 미래통합당으로 이름을 바꾼 뒤에도 반성하지 않고 또다시 망언을 반복했습니다.

오카다 료타와 미쓰비시는 강제징용 재판 관련 기본적인 내용에도 무관심한 채 국민의 분노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해리스 미대사는 주권침해 망언을 이어갔고, 트럼프 대통령은 어제도 한국이 더 많은 돈을 부담해야 한다며 방위비 증액을 강요했습니다. 이들에게 전 국민적 분노의 엄중함을 전하려 했던 항의 행동은 제대로 된 민주주의의 작동을 위해 필수적이었습니다.

국민주권시대는 이미 시작됐습니다. 미국, 일본과 같은 외세에 휘둘리지 않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국민을 무시하는 미래통합당과 적폐 세력에게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이제 국민들은 직접 행동할 것입니다. 아무리 틀어막으려 해도 새로운 시대가 시작됐음을 알리는 사건들이 폭발적으로, 연쇄적으로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거침없이 승리의 역사를 써 내려가는 위대한 국민을 위해 제 청춘을 값있게 쓸 수 있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지난 6개월간 옥 생활을 통해 국민을 위해, 조국을 위해 내 모든 것을 바친다는 말의 무게를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탄압에도 좌절하지 않고 후대만 행복하면 그만이라고 눈빛을 밝혔던 선배투사들처럼 저 역시 오늘 겪는 어려움이 모두가 진정 주인 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밑거름이 될 거라 믿으며 영광으로 받아들일 것입니다.

재판장님께서는 이 재판의 결과가 직접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출하고자 하는 국민의 열망을 틀어막는 근거가 되지 않도록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양심에 따른 판결을 해주시길 바랍니다.

<이상혁 학생>

재판장님, 이제 저희가 구속된 지 6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상은 진척이 없습니다.

코로나19로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국민들이 있지만 국가의 재정 상황을 이유로 협의가 늦어져 지원금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6조 원이 넘는 국민의 혈세를 주한미군의 배를 채우는 데 쓴다는 것은 납득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사죄와 피해 보상을 했다는 소식도 들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나라 대법원의 피해 보상 청구권 인정 판결은 단순한 피해 보상의 성격을 넘어 일제강점기의 모든 피해자와 후세들을 위해, 그리고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출발선에 섰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단 한 걸음도 떼지 못한 채 여전히 피해자들이 고통 속에서 살고 계십니다.

슬프고 안타깝습니다. 꽤 긴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해결하지 못한 채 국민의 주권이 침해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희의 작은 목소리는 이 문제들을 직접 해결하기엔 결정적 힘이 없었습니다. 이런 현실을 모르고 있었던 바는 아니지만 미 대사관저 시위 이후 고양이는 무사하다며 트윗을 올리는 해리스 미 대사와 자신은 책임이 없다며 나 몰라라 하는 미쓰비시 엠에이치아이 컴프레서 코리아 책임자 오카타 료타씨를 보며 분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현실을 무력하게 바라만 보고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국민의 주권과 이익을 침해한다면 이에 저항하는 것은 국민의 책임과 의무라는 것을 알아주십시오. 또한 지금까지 이 대한민국을 만들어 온 것도 수많은 국민의 저항과 투쟁이라는 사실도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당시에는 범법자로 모진 고문과 희생이 뒤따랐지만 역사는 그들을 위인으로, 열사로 기억합니다. 저희의 목소리는 그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지만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위한 조그만 돌다리 하나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번 대한민국의 주인은 국민이라고 말씀드립니다. 국민의 주권과 이익을 침해하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저희의 양심의 소리를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김유진 학생>

지난 4월 13일, 법이 보장하는 1인 시위를 미 대사관저 앞에서 하게 되면 수십의 경찰에 둘러쌓여 오로지 (외교관계에 관한) 비엔나 협약만을 주장하는 한국 경찰관들을 맞닥뜨리게 됩니다. 저 역시 같은 일을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비엔나 협약 제9조에 ‘접수국은 언제든지 그리고 그 결정을 설명할 필요 없이 공관장이 "불만한 인물"(PERSONA NON GRATA)이며 "받아들일 수 없는 인물"이라고 파견국에 통고할 수 있다’라는 조항이 있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한 인물이 내정간섭과 월권행위를 일삼는 해리스 주한미국대사임은 두말할 것도 없습니다.

미 대사관저. 이 공간은 대한민국에서 어떠한 곳입니까? 법의 취사선택이 가능하고 마치 성역처럼 보호되는 공간. 국민의 목소리는 그 담자락을 넘지 못합니다. 방위비 분담금 인상 문제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대미의식을 놀랄 정도로 변화시켰습니다.

뉴스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방위비 분담금 문제로 그들의 실체를 확실히 알리며, 국민들에게 미국에 대한 환상을 깨트려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식민지 총독행세로 거센 비판을 받고 있는 주한미국대사. “해리스는 대한민국 총독인가?” 일제 식민지배의 뼈아픈 역사를 겪은 우리 국민들에게 이는 얼마나 소름 끼치는 대목입니까.

국민들이 피땀 흘려 내는 혈세가 주한미군 주둔비로, 미국무기 구입비로 심지어는 미군이 우리 강토를 오염시킨 것을 정화하는 비용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미국의 국가이익과 대한민국의 국가이익을 더 이상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지금의 국민적 여론입니다.

지난 10차 방위비 협상 때는 국민의 52%가 주한미군이 감축되더라도 방위비 분담금 증액에 반대했고, 11차 협상 때는 국민의 96%가 방위비 분담금을 증액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저희 청년들은 미국의 이익을 위해 대한민국 국가재산을 헌납하는 행위를 단호히 거부하고, 주권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금기의 벽을 넘었습니다. 내 나라가 외세에 굴하지 않고 자주적인 모습을 보일 때 국민은 자긍심을 느낍니다. 판사님도 그렇지 않습니까?

 “미 대사관저를 넘어 자주로운 나라로, 적폐들의 담을 넘어 국회로” 

제가 옥중에서 출마하며 내걸었던 슬로건입니다. 이는 제 자신이 온몸으로 느꼈던 현실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합니다.

덕수궁 한복판에 자리한 미 대사관저. 수도 한복판에서 영업 중인 전범 기업 미쓰비시. 저희가 이 법정에 서게 된 이유 또한 과거사가 현재 진행되고 있는 문제들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입니다. 해방 이후 구조화되어 지속되어온 불평등한 한미관계가 바르게 정립되고, 일제 식민지배 과거사가 적극적으로 청산될 때 저희의 행동은 분명 정당한 것으로 재평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그저 역사가 순리를 따를 때까지 기다리라고 해서야 되겠습니까? 무죄 판결은 판사님께서 내려주시는 하사품과 같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사회가 잘못된 역사는 바로 잡고, 부당한 침해는 양심을 걸고 맞서라고 청년들을 독려하길 바랍니다.

내 나라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우리 청년들은 이 재판장을 나선 후에도 행동에서 부끄럽지 않은 당당한 주권자로 살아갈 것입니다. 이것은 저희가 벌여온 투쟁의 가장 깨끗한 동기이자 그 행위가 정당했음을 증거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다짐이자 결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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