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랑 칼럼] 유불우지도(由不虞之道), 공기소불계(攻其所不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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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랑 칼럼] 유불우지도(由不虞之道), 공기소불계(攻其所不戒)
  • 충청메시지 조성우
  • 승인 2020.04.29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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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이 생각하지 못한 길을 거쳐 경계하지 않는 곳을 공격한다

『손자병법』 「구지편」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이정랑 언론인 (중국고전 연구가)
이정랑 언론인 (중국고전 연구가)

작전은 신속함이 으뜸이다. 적의 힘이 아직 미치지 못한 빈틈을 타고 적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길을 거쳐 적이 경계하지 않고 있는 곳을 공격한다.

이 말의 요지는 적이 예상하지 못하는 방법과 뜻밖의 공격으로 용병술을 펼쳐야 한다는 것이다. ‘상대의 빈틈을 탄다’는 뜻의 ‘병귀승인(兵貴乘人)’을 구체화한 것이 ‘적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길을 거쳐 적이 경계하지 않고 있는 곳을 공격한다’는 ‘유불우지도, 공기소불계’다.

『사기』 「회음후열전」에 실린 이야기다. 204년, 한신은 조(趙)를 공격하고 있었다.

이좌거(李左車)는 조나라 장수 성안군(成安君) 진여(陳余)에게, 정형(井陘-지금의 하북성 정형 동쪽)의 도로는 좁아서 전차가 다닐 수 없고 기병도 전열을 제대로 갖출 수 없으니 주력 부대로 하여 도랑도 깊고 요새도 높은 정형을 지키게 하는 한편 따로 3만 군사를 내어 한군의 식량 보급로를 차단한다면, 한신은 싸우지도 못하고 물러서지도 못할 것이며 또 민간의 식량을 약탈할 수도 없으니 금세 무너질 것이라는 대책을 건의했다.

그러나 진여는 이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런 상황을 눈치 챈 한신은 곧장 공격을 가하여 조군을 대파해 버렸다.

263년, 위나라 장수 종회(鍾會)‧등애(鄧艾)가 촉을 공격했다. 촉의 장수 강유(姜維)는 패하여 검각(劍閣-지금의 사천성 검각)으로 물러나 전열을 가다듬고 험준한 곳을 선택해 종회에 대항했다. 종회가 이끄는 군대는 여러 차례 공격을 가했으나 별다른 전과를 올리지 못했다. 게다가 식량 보급로가 멀고 험해서 군량마저 떨어져 후퇴를 준비하는 수밖에 없었다.

반면에 등애는 기세를 타고 계속 진군했는데, 감숙과 사천성 사이의 좁은 음평초(陰平抄)로부터 출발하여 검각을 빙 돌아 황무지를 7백여 리 행군했다. 산을 뚫어 길을 내고 계곡에서는 임시 다리를 놓고 나무를 베어 절벽을 연결하는 고난의 행군을 단행한 끝에 곡강(曲江)에 이르렀다. 여기서 등애는 곧장 촉군을 향해 쳐들어가 그 주력군을 섬멸했다.

고대 전쟁은 정찰‧통신 장비가 발달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적이 방비하지 않고 경계하지 않는 도로를 내 쪽에서 이용하기만 한다면, 경계가 없는 곳을 공격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현대전은 각종 정찰 능력과 통신기술이 크게 발달하여 대부대의 움직임은 설사 적이 경계하지 않는 길을 이용한다 해도 금세 발각되고 만다. 새로운 전쟁 조건 아래에서 어떻게 경계하지 않는 길을 따라 그 허점을 공격하느냐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이 용병 사상, 즉 적의 대비가 없는 틈을 타서 갑자기 기습한다는 원칙은 영원히 시들지 않는 만고불변의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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