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파] '2달에 2억, 2년에 17억'...검찰 전관 변호사와 재벌의 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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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 '2달에 2억, 2년에 17억'...검찰 전관 변호사와 재벌의 거래
  • 뉴스타파 조원일
  • 승인 2020.04.01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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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절차가 법과 원칙이 아닌, 전관변호사와 공직자의 연고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공직자의 부패행위와 결합될 수 있고, 결국 국민의 사법불신과 법치주의 훼손이라는 결과를 초래한다.”

지난 17일 법무부가 ‘법조계 전관특혜 근절 방안’을 내놓으면서 지적한 이른바 ‘전관예우’의 폐단이다. 검찰이나 법원 고위직을 지내고 변호사가 된 이들에게 현직 후배들이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 특혜를 주는 것을 의미하는 전관예우, 특히 검찰의 전관예우는 수사권-기소권의 자의적 행사, 정치적 판단에 따른 업무 처리, 제식구 감싸기 등과 함께 많은 국민으로 하여금 검찰을 불신하게 만드는 핵심 요소로 꼽힌다.

최근 뉴스타파는 전관예우 최대 수혜자로 지목돼 온 검찰 고위직 출신 변호사들과 국내 주요 대기업이 체결한 일부 법률 계약서를 입수했다. 효성그룹과 건설회사인 삼부토건이 2011년~2017년 각각 체결한 것들이다.

대부분 법률 자문의 형태로 된 이들 계약서에는 받을 액수만 명시돼 있을 뿐, 전관 변호사들의 역할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2달에 2억 원, 2년에 17억 원 같은 상식을 벗어나는 계약기간이나 금액은, 이 계약이 정상적인 변호 활동이 아닌 ‘전화변론’이나 ‘몰래변론’ 같은 비정상적인 로비 약속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낳는다. 거액의 자문·변호계약이 맺어진 이후 효성그룹 총수가 불구속 재판을 받고, 삼부토건의 주요 인사들이 무혐의 처분을 받은 사실은 의혹을 더 키운다.

▲ 남기춘 전 서울서부지검장
▲ 남기춘 전 서울서부지검장

효성 탈세 사건 때 ‘17억 계약’...‘강골 검사’ 남기춘의 변신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본사를 둔 효성그룹은 지난 2013년 검찰 특수부의 수사를 받았다. 국세청 세무조사에서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이 수천억 원대 탈세를 저질렀다는 단서가 나오면서 시작된 수사였다. 뉴스타파는 이 시기 효성그룹이 검찰 수사 등을 대비해 체결한 14건의 법률 계약서를 입수했다. 법률자문 형태로 맺어진 계약의 상대방은 대부분 검사 출신 변호사로, 검찰총장을 비롯해 ‘검사의 꽃’으로 불리는 검사장급 이상만 5명이었다.

효성과 최고액을 계약한 사람은 2011년 서울서부지검장을 끝으로 검찰을 떠났던 남기춘 변호사다. 대검중수부 과장,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장 등을 지내며 특수통 검사로 이름을 날렸던 그는 효성에 대한 검찰 압수수색 한 달 후인 2013년 11월, 효성그룹과 2년짜리 법률 자문 계약을 맺었다. 자문료는 무려 17억원. 계약서에는 ‘효성이 17억 원 전액을 계약 1주일 이내에 지급한다’고 기재돼 있다. 반면 그가 맡을 역할은 “기업경영과 관련하여 발생하는 민·형사소송 및 법률분쟁과 관련된 일체의 법률자문을 맡긴다”고만 돼 있을 뿐 구체적이지 않았다.

그런데 남기춘 변호사의 자문 계약이 눈길을 끄는 건 금액 때문만이 아니었다.

‘강골 검사’로 불렸던 남기춘 변호사는 재벌과 권력에 굽히지 않는 인상을 남기고 검찰을 떠난 사람이다. 서울서부지검장으로 한화그룹 비자금 사건 수사를 지휘하던 그는, 검찰을 떠난 직후인 2011년 2월 언론을 통해 이런 말을 남겼다.

“살아있는 대통령을 수사하는 것보다 어려웠다. 재벌은 교묘하게 수사를 방해했고, 법무부도 우리를 지치게 했다.” 

조선일보 2011년 2월 19일

검찰을 떠나고 1년쯤 뒤, 변호사 남기춘은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에 들어가면서 또 다시 화제에 올랐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김앤장은 ‘검사 남기춘’이 사표를 던지게 만든 ‘한화그룹 비자금 사건’ 당시 한화 측의 변호를 맡은 곳이었다. 그리고 이듬해인 2013년, 남기춘 변호사는 자신이 검사장을 지냈던 서울서부지검 길 건너편에 위치한 재벌, 효성그룹의 변호사가 됐다.

뉴스타파는 재벌권력을 비판하며 검찰을 떠난 뒤 재벌의 방패로 변신한 그에게 연락해, 효성그룹과 맺은 17억 원짜리 법률계약 등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그는 인터뷰를 거절했다.

(2013년 11월에 17억에 법률자문 계약을 맺은 적이 있습니다.)

“나는 그런 거에 대해 취재에 응하고 싶지 않아요. 왜 나한테 물어보는지도 모르겠고, 내가 기자에게 그런 걸 대답할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고...내가 공무원이었을 때는 국민을 상대로 해서 대답할 의무라고 생각해서 했지만, 나는 지금은 공무원도 아니고 민간인이기 때문에 기자들과 접촉하고 대응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어요.”

(서부지검을 끝으로 검찰을 나올 때 한화그룹 수사를 했는데, 재벌의 교묘한 수사 방해 비판을 하셨잖습니까. 이후 지검장님 행보도 비슷한 흐름으로 볼 여지가 있다 보니…)

“그건 알아서 하시고요, 그건 기자님 생각이고. 나는 하여튼 기자하고 얘기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17억원 계약 부분만 확인해 주시죠?)

“나는 기자하고 얘기하고 싶지 않다고 그랬죠? 지금 말하는 기자하고 아는 사이도 아니고 생면부지의 분인데... 말을 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남기춘 변호사 전화인터뷰 (2020.3.)

부정부패 척결과 사법정의 실현이라는 공적 임무를 수행하면서 얻은 검사 경력이, 비리 혐의를 받는 기업을 보호해 주고 거액을 받는 변호사 개인의 자산으로 둔갑한 상황을 어떻게 봐야할까. 한상희 건국대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법조계에 나타나는 잘못된 모습 중 하나가 현직에 있을 때는 ‘거악을 척결하겠다’, ‘법과 정의를 바로 세우겠다’고 공언하다가 변호사를 개업한 후에는 자기들이 비난했던 거악을 위해 법의 칼날을 피할 수 있도록 돕는 모습입니다. 국민들 입장에서 보면 법의 엄정성에 대한 불신을 야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홍만표 변호사는 2013년 11월부터 12월까지 2개월간의 법률 자문 대가로 효성그룹으로부터 2억원을 받기로 한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 홍만표 변호사는 2013년 11월부터 12월까지 2개월간의 법률 자문 대가로 효성그룹으로부터 2억원을 받기로 한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남기춘 변호사보다 총액은 적지만, 효성으로부터 수임 기간 대비 최고 수임료를 계약한 변호사는 따로 있었다. 2011년 대검찰청 기획조정부장을 끝으로 검찰을 떠났던 홍만표 변호사다.

대검 중수과장과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장 등을 지내며 역시 특수통 검사로 이름을 날린 홍만표는 남기춘과 비슷한 시기에 효성그룹과 2억 원의 법률계약을 맺었다. 그런데 계약기간은 고작 2개월, 한 달에 1억 원씩 자문료를 받은 것이다. 홍만표와 효성그룹이 맺은 계약서에는 “자문료 2억 원에 대한 세금도 효성이 모두 부담한다”고 돼 있다.

홍만표는 검찰을 떠난 뒤, 전군표 국세청장 뇌물 수수 사건, 동양그룹 총수 비리 사건, 네이처리퍼블릭 정운호 사건 등을 잇달아 수임하며 법조계의 유명인사가 됐다. 2011년 9월부터 16개월 동안 국세청에 신고한 수임료만 110억 원에 달했다. 하지만 그렇게 잘 나가던 홍만표는 2015년 세금포탈 등의 혐의로 구속돼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 받았다.

2013년 탈세 논란에 이어 이른바 ‘형제의 난’으로 알려진 총수 일가의 경영권 분쟁까지 벌어지면서 장기간 검찰 수사를 받게 됐던 효성그룹은 남기춘, 홍만표 외에도 여러 고위직 검찰 출신 변호사들과 계약을 맺었다.

대검찰청 중수부장 출신인 최재경 변호사와 8억 원, 역시 중수부장을 거쳐 부산고검장을 지낸 김경수 변호사와 5천만 원, 법무연수원장을 지낸 조근호 변호사는 3억 원, 대검 중수부 출신 이 모 변호사 1억 원, 서울지검 특수부장 출신인 김 모 변호사 6억 원 등이었다. 효성이 검찰 고위직 또는 특수통 출신 변호사 7명과 맺은 변호사비는 총 37억5천만 원에 달했다.

화려한 변호인단을 꾸린 탓인지, 효성그룹에 대한 수사와 재판은 그리 날카롭게 진행되지 못했다. 조석래 당시 효성그룹 회장의 구속영장은 기각됐다. 조석래 회장은 2003~2012년에 분식회계를 통해 법인세 1천238억 원과 임직원 명의 차명주식을 통해 개인적으로 획득한 양도 소득 및 배당 소득에 대한 세금 110억원을 포탈한 혐의가 유죄로 인정됐지만, 1심과 2심에서 모두 징역 3년이 선고되는데 그쳤다. 2020년 3월 현재 조 회장은 불구속 상태에서 대법원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 2012년 벌어진 효성그룹 ‘형제의 난’ 당시 조현문 전 사장은 우병우 전 민정수석에게 변호를 맡겼다.
▲ 2012년 벌어진 효성그룹 ‘형제의 난’ 당시 조현문 전 사장은 우병우 전 민정수석에게 변호를 맡겼다.

우병우 영입한 조현문 전 효성 사장…‘로비스트 박수환 문자’에 등장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과 다툰 동생 조현문 전 효성 사장도 일명 ‘형제의 난’ 당시 이름만 대면 알만한 검찰 출신 변호사들을 불러 모았다. 지난해 1월 뉴스타파가 입수, 공개한 ‘로비스트 박수환 문자’에는 조현문 전 사장 변호인들이 로비스트 박수환 씨와 주고 받은 문자가 나오는데, 대검 중수과장과 수사기획관 등을 거치고 박근혜 청와대 핵심 실세 자리까지 올랐던 우병우 전 민정수석, 김준규 전 검찰총장이었다.

구체적인 규모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이들 역시 조현문 측으로부터 상당한 금액을 법률자문 등의 명목으로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음은 ‘로비스트 박수환 문자’ 중 일부.

“사장님, 한가지 확실한 건 우 대표가 김 총장보다 더 똑똑하네요. 그리고 고객의 베스트 인터레스트에 서서 서비스하구요...” 

박수환이 조현문에게 보낸 문자, 2014. 4. 16

“대표님 축하 올립니다 근데 조현문 사장님을 버리셨네요 ㅋ” 

박수환이 우병우에게 보낸 문자, 2014. 5.12

“한번 뵈야겠네요‥조현문 사장 일 진행 관련‥조사장과도 통화했습니다‥23일정도” 

김준규가 박수환에게 보낸 문자. 2014. 10. 21

▲ 정상명 제35대 검찰총장. 정 전 총장은 2011년 삼부토건과 법률계약을 맺었다.
▲ 정상명 제35대 검찰총장. 정 전 총장은 2011년 삼부토건과 법률계약을 맺었다.

서울 중구 회현동에 본사를 두고 있는 건설회사 삼부토건 역시, 2011년 10월 서울중앙지검 특수부로부터 수사를 받으면서 검찰 출신 변호사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같은 해 12월 삼부토건 회장 등 최고위 경영진이 사인한 대금지급 결재 문서에는 검찰총장 출신 변호사의 이름이 등장한다.

바로 제35대 검찰총장을 지낸 정상명 변호사다. 그는 ‘삼부토건에 대한 검찰 조사와 관련한 자문 계약’을 맺고 착수금 5천만 원에 성공보수 1억 원을 약속 받았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삼부토건 문서에는 애초 2011년 연말까지던 삼부토건과 정상명 변호사 간의 계약이 ‘검찰 수사가 끝날때까지’로 수정된 흔적도 들어 있다. 정상명 변호사의 역할이 ‘검찰 수사 대응’이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다.

참여정부 시절(2005~2007년) 당시로서는 드물게 검찰총장 임기 2년을 모두 채운 정상명 변호사는 과거 여러 공개석상에서 거악 척결과 사회적 약자 보호에 앞장서겠다고 다짐한 바 있다.

“공정하고 엄정한 법집행을 통해 정의로운 검찰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국민들은 거악에는 추상같이 엄정하고 약자에는 한없이 따뜻한 검찰을 원하고 있음을 명심하고 범죄로부터 국민들을 안전하게 지키고 부정부패를 척결하는 일에 결코 소홀하지 않겠습니다.” 

정상명 검찰총장 인사청문회 (2005.11.7.)

하지만 그도 퇴직 이후에는 대다수 검사들과 비슷한 행보를 보였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정 전 총장이 변호를 맡은 이후 삼부토건 사건은 관련 임직원 전원이 검찰로부터 무혐의 처분을 받으며 흐지부지됐다.

뉴스타파는 삼부토건 사건 수임과정을 비롯해, 정식 사건 수임 계약 때나 주고받는 성공보수를 자문계약 형식으로 받아간 이유 등을 묻기 위해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정상명 변호사 사무소를 찾아갔지만,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변호사가 영향력을 미쳐서 성공했다는 것은 한마디로 그 수사를 덮었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습니다.) 수사가 더 진행되지 않거나, 검찰에 송치되지 않거나, 또는 기소를 하지 않는 측면으로 넘어가는 수도 있고요. 경우에 따라서는 구속돼야 하는 사건인데도 구속이 되지 않는다든지, 또는 중범죄로 기소돼야 되는 사건을 경범죄로 기소한다든지, 증거 상당 부분을 덮어버린다든지. 여러 가지 그 봐주기 요소들이 존재한다고 봐야 되겠죠.”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삼부토건은 정상명 전 검찰총장 외에도 검찰 요직 출신 변호사들을 대거 고용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수사했던 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과 ‘최순실 국정농단’ 특검을 맡은 박영수 전 대검 중수부장,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장 출신의 유 모 변호사 등이다. 이들 역시 수천만 원대의 착수금, 수억 원대의 성공보수를 변호사비로 약속 받았다.

▲ 2011~2015년 사이 삼부토건과 법률 계약을 맺은 검찰출신 변호사들.
▲ 2011~2015년 사이 삼부토건과 법률 계약을 맺은 검찰출신 변호사들.

지난 3월 17일, 법무부는 법조계의 오랜 악습 고리를 끊기 위해 ‘법조계 전관특혜 근절 방안’을 내놨다. 검사장 등 고위공직을 지낸 법조인의 사건 수임 제한 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늘리고, 선임계 없이 변호를 하는 이른바 ‘몰래변론’ 처벌 규정 등을 강화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그렇다면 이제 ‘전관예우’ 근절을 기대할 수 있는 걸까.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는 여전히 나오고 있다. 특히 현직 검사나 판사들에 대한 현실적 규제책이 마련되지 않는 한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번 방안으로는) 전혀 규제하지 못하죠. 전관예우를 막기 위한 여러 제도적 장치들이 있는데요, 이것들을 피해가기 위한 방법이 자문계약 같은 드러나지 않는 형태의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거든요. 사실 전관예우는 특혜를 누리는 변호사만의 문제라기보다는 그 변호사의 영향권 안에 움직이는 현관의 문제입니다. 수사를 담당하고 있는 검사, 재판을 담당하고 있는 판사들이 어떤 연줄에 의해서, 또는 내가 모시던 분이기 때문에, 또는 같이 근무했다는 이유 때문에 자기의 판단을 바꾸는 관행이 더 문제인 것이죠.”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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