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랑 칼럼] 선성후실(先聲後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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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랑 칼럼] 선성후실(先聲後實)
  • 충청메시지 조성우
  • 승인 2020.03.31 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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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목소리를 높이고 나중에 실력을 드러낸다.

『주서 周書』 「최유전 崔猷傳」을 보면 “무릇 병이란 ‘선성후실’에 힘써야 백전백승할 수 있고 약함을 강함으로 바꿀 수 있다”는 대목이 나온다. 명나라 때의 『행무요약 行武要略』 「정집 正集 2권‧진법 陣法」에도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이정랑 언론인 (중국고전 연구가)
이정랑 언론인 (중국고전 연구가)

예로부터 군을 잘 다스리는 자는 진(陣)을 치지 않으며, 진을 잘 치는 자는 싸우지 않는다고 했다. 이는 계략으로 변화에 대처하고, ‘선성후실’함을 말한다. 군의 의지는 본디 적의 마음을 빼앗는 것이지, 요새를 쌓고 군기를 나부끼며 화살이 날아다니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승부는 그 전에 판가름 난다.

요컨대, 먼저 기세와 위엄으로 적의 사기를 무너뜨린 후 실력으로 섬멸하라는 것이다. ‘선성(先聲)’에서 ‘성’은 기세와 위엄 등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을 가리킨다. ‘후실(後實)’에서 ‘실’은 군대의 실제 역량을 가리킨다. 군대의 실제 역량을 발휘하기에 앞서 기세와 위엄으로 상대를 제압할 수 있어야 한다.

『사기』 「회음후열전」에 나오는, 한신이 조나라를 격파한 후 그 기세와 위엄으로 연을 굴복시킨 것이 이 계책을 이해하는 데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명나라 정덕제(正德帝) 14년인 1519년, 주신호(朱宸濠-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의 자손)는 남창(南昌)에서 봉기한 후 곧장 남경으로 쳐들어가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병부상서(兵部尙書) 이윤사(李允嗣)는 이 소식을 듣자마자 몸소 군을 이끌고 요충지를 지켰다.

그는 거짓으로 명령을 내려, 10만 관군의 절반은 남경에, 나머지 절반은 안경(安慶)에 집결하고 호광(湖廣) 등지의 병사도 수륙(水陸)으로 집결하여 때맞추어 주신호를 공격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이윤사는 1천여 명을 선발하여 각종 깃발 따위를 나부끼고 1백 척의 쾌속선에 태워 북을 두드리며 전진하게 했다. 이러한 위세에 눌린 주신호의 군대는 순식간에 와해 되고 말았다.

이윤사가 주신호에게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먼저 기세와 위엄으로 상대의 심리를 빼앗는다’는 ‘선성탈인(先聲奪人)’의 계책이 주효했기 때문이었다. 이윤사는 각종 수단으로 주신호의 군대를 놀라움과 두려움 속으로 몰아넣음으로써 싸우기도 전에 승리한 셈이었다. ‘선성후실’이나 ‘선성탈이’은 근본적으로 같은 계략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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