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명칼럼】 위대한 삼성, 대단한 장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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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명칼럼】 위대한 삼성, 대단한 장충기
  • 이기명 팩트TV 논설위원장
  • 승인 2017.08.14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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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언론의 자화상

【팩트TV-이기명칼럼】 구걸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비참하고 추한 구걸이었다. 자존심으로 먹고산다는 언론인이다.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다. 살다 보면 창피한 꼴도 많이 보지만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지.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누구한테 구걸했는지 아는가. 비판을 일삼던 삼성이다. 미전실(미래전략실)의 장충기였다. 삼성의 ‘미전실’은 청탁의 ‘미전실’인가. 이들이 한국 경제의 미래전략을 설계하는가.

올 들어 문화일보에 대한 삼성의 협찬+광고 지원액이 작년 대비 1.6억이 빠지는데 8월 협찬 액을 작년(7억) 대비 1억 플러스(8억)할 수 있도록 장 사장님께 잘 좀 말씀드려달라는 게 요지입니다. 삼성도 많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혹시 여지가 없을지 사장님께서 관심 갖고 챙겨봐 주십시오. 앞으로 좋은 기사, 좋은 지면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손가락을 빨아도 자존심이 있다. 해야 할 일과 말아야 할 일이 있다. 들통 난 일부 언론인의 구걸행각이야말로 한국 언론사에서 영원히 빛날 것이다.

제 아들이 삼성전자 00부문에 지원을 했는데 결과발표가 임박한 것 같습니다. 지난해 하반기에도 떨어졌는데 이번에 또 떨어지면 하반기에 다시 도전을 하겠다고 합니다만 올 하반기부터는 시험 과정과 방법도 바뀐다고 해서 이번에도 실패를 할까봐 온 집안이 큰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CBS 한 간부는 제 아들을 삼성전자에 취업시켜 달라고 애원했다. 아니 애걸복걸이었다. 문자 메시지에 자녀 이름과 수험번호 출신 대학까지 꼼꼼히 적었다.

부족한 자식을 둔 부모의 애끊는 마음을 가눌 길 없어 사장님의 하해와 같은 배려와 은혜를 간절히 앙망하며 송구스러움을 무릅쓰고 감히 문자를 드립니다.

지극정성 단장의 호소를 보내는 아비의 간청에 눈물을 흘리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으랴. 부디 삼성의 직원이 됐기를 빈다.

CBS노조는 “사실 확인 결과 그 간부는 지난해 7월 명예퇴직한 이 아무개며 청탁이 이뤄진 시점이 재직 당시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며 △회사의 정확한 사실 해명 및 반성과 유감 표명 △CBS 전 직원을 향한 이 모 씨의 사과문 작성 및 공개 △이 모 씨에 대한 CBS 명예훼손 소송 진행 등을 요구했다. 시사IN 보도 후 CBS 출신 후배는 고개를 떨구었다.

(이미지 출처 - 고재열 기자 인스트그램)

■ 부탁도 정도문제

취직 부탁은 예전에도 있었다. 친한 친구에게 ‘내 못난 자식 좀 데리고 일 좀 시켜보게’ ‘혹시 자네 회사에 일자리 하나 없나. 내 자식이 제대했거든’ 이 정도야 누가 시비를 하랴. 그러나 ‘사장님의 하해와 같은 배려와 은혜를 간절히 앙망하며’ 자식의 취직 부탁을 하는 언론사 간부의 애걸은 그냥 넘겨볼 수가 없다. 할 짓이 아니다. 언론인이기 때문이다.

그의 애걸 뒤에는 언론인의 특권의식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닌가. 내 말 안 들어 주면 알지. 염치불구 사외 이사 한자리 부탁드립니다. 부족합니다만 기회주시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작년에 서울경제 그만두고 000 초빙교수로 소일하고 있습니다.

서울경제신문에 근무한 간부가 2015년 장충기 사장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다. ‘우는 놈도 속이 있다’고 하는데 이런 문자를 보낸 절박(?)한 사정이 있었겠지만 이해해 주는 국민이 몇이나 될까. 장충기가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장충기가 얼마나 웃었을까. ‘흥 언론이라는 것들’ 할 말이 없다.

2015년 신규 면세점 4곳이 발표되던 때, 매일경제 기자는 이렇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존경하는 실차장님! 어제 감사했습니다. 면세점 관련해 000과 상의해보니, 매경이 어떻게 해야 삼성의 면세점 사업을 도와줄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알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2016년 7월 이건희 회장의 성매매 동영상 관련 보도가 나왔던 당시다. 연합뉴스 한 간부는 이렇게 메시지를 전송했다.

장 사장님. 늘 감사드립니다. 시절이 하수상하니 안팎으로 조심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누워계시는 이건희 회장님을 소재로 돈을 뜯어내려는 자들도 있고요. 나라와 국민, 기업을 지키는 일이 점점 어려워져갑니다.

연합뉴스 노조는 8일 성명을 발표하고 간부들을 성토했다. 기업을 지키는 일이라니. 언론이 삼성과 이건희를 지키는 곳인가.

조복래 콘텐츠융합담당 상무와 이창섭 전 편집국장 직무대행(현 연합뉴스TV 경영기획실장)은 ‘국가기간통신사’가 아니라 ‘삼성기간통신사’ 소속인 것만 같다. 당신들은 연합뉴스에 무슨 짓을 한 것인가.

노조는 특히 “‘누워계시는 이건희 회장님을 소재로 돈을 뜯어내려는 자가 있다’ 는 말은 시쳇말로 ‘어이가 없다’. 한국을 대표한다는 기업의 총수가 성매매한 혐의를 받는 현실을 놔둔 채 ‘돈을 뜯어내려는 자’ 들만 성토하는 것이 언론사 편집인이 할 말인가” 라며 조 상무의 자진 사퇴를 촉구했다.

시사IN의 보도에 의하면 상대방이 특정되지 않은 또 다른 문자 메시지에서 TV조선의 보도 방향에 대한 언급이 있다고 밝혔다.

방상훈 사장이 조선과 TV조선에 대해 기사 쓰지 않도록 얘기해두겠다고 했습니다. 변용식 대표가 자리에 없어 000에게도 기사 취급하지 않도록 부탁하고 왔습니다.

 

■ 언론이라는 직업

언론인도 발에 흙을 묻히고 산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존재가 아니다. 그러나 언론인은 특별한 존재임에도 틀림이 없다. 왜냐면 세상에 부정과 비리를 고발하고 대중에 잠든 이성을 깨우는 목탁과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론이 부패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말이 있다.

시사IN이 보도한 삼성의 장충기 사장과 언론사 간부들 사이에 메시지는 과연 얼마나 충격을 주었을까. 스스로들 생각해 보면 잘 알 것이다. 과연 장충기는 한 명뿐이며 메시지를 보낸 사람들은 그들뿐일까. 재수가 없어서 우리만 걸렸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인가.

탐관오리들이 기자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신들의 죄를 폭로 응징하는 힘을 가졌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서든지 가깝게 지내려고 한다. 한 점 부끄럼 없이 당당한 기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내가 존경하는 기자들은 수도 없이 많다. 

30여 년 전 자식처럼 여기던 인터넷 매체 기자가 결혼했다. 셋방 하나 얻어서 살림을 차렸다. 추석이 됐다. 조그만 상품권 하나 건넸다. ‘선생님 마음만 받겠습니다.’ 지금 그는 언론사 간부가 됐다. 난 그를 지금도 존경한다.

 

■ 부끄러움을 모르면

5·16 쿠데타 이후 방송에 나온 실세들은 대단했다. 라디오 방송뿐이던 시절에 녹음이 끝나면 그들은 거리낌 없이 PD에게 수표를 건넸다. 당시 쌀 몇 말값이 월급이던 PD에겐 눈이 뒤집힐 액수였다. 수표는 독이었다. 요구대로 다 해 줬다. 노예로 길들여진 것이다. 

장충기는 자신에게 메시지를 보낸 언론사 간부들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자신에게 이런 부탁을 다 한다고 황송해 했을까. 모든 장충기들이 받은 문자 전시회를 한다면 세상은 훨씬 달라질 것이다.

 

■ 후속보도는 왜

시사IN 보도 이후 후속보도는 어떤가. JTBC와 한겨레, 경향 등 일부 언론을 제외하고는 진짜 별로다. 차마 언론의 민낯이 부끄러워서일까. 이미 알고 있었던 일들이었기에 ‘까이꺼’ 라고 생각했을까. 부끄러움은 반성의 계기가 된다. 

누군 별다르냐는 억지는 그렇게 살다가 인생의 끝을 본다. 언론이 후속보도를 함으로써 스스로 종아리에 매를 쳤다면 국민의 눈은 어땠을까. 개 꼬리 3년 묻어놨다는 조롱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박기영 교수가 사퇴하고 사과했다. 처음부터 없었으면 더 좋았을 일이지만 잘한 선택이다. 문자메시지의 주인공도 스스로 결단을 한다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열 번 죽었다 깨도 어림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혹시 고뇌에 찬 양심 고백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해 본다. 새벽바람이 선선하다. 계절은 정직하다. 자연은 인간에게 무언의 교훈을 준다.

지금 KBS와 MBC가 몸부림치고 있다. 선망의 대상으로 존경받던 방송사 기자들이 찌그러진 깡통으로 추락했다. 명함도 내놓기가 부끄럽고 촛불 취재현장에서 쫓겨나기 일쑤였다. 쫓겨나면서 뒤통수에 박히는 눈총을 견뎌 낸 기자들이 불쌍하다. 

이제 기자답게 살자고 절규하는 것이다. 급기야 MBC는 81명의 기자가 제작거부에 돌입했다. 모두 200여 명이다. 병사가 전쟁을 포기한다면 결과는 뻔하다. 김장겸은 또다시 기자충원을 한다. 용병을 모집하는 것인가. 그것으로 사태의 해결을 믿는다면 바보 선언이다.

 

■ 방송장악 기도?

야당의 18번이 다시 등장했다. 정권이 방송장악을 기도한다는 것이다. 역시 해 보던 일이라 쉽게 말한다. 솔직하자. 참여정부가 언론장악을 기도했는가. 노무현 대통령이 재임 동안 KBS에 전화 한 번 안 했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안다. KBS 기자 출신인 민경욱의원이 잘 알 것이다.

압력행사로 언론장악을 한다면 독재 시대와 무엇이 다른가. 압력으로 장악된 기자들이 승복하는가. 개혁은 도로아미타불이다. 언론 스스로 변해야 하고 개혁해야 하고 새로 태어나야 한다. 언론은 스스로 자정능력이 없는가. 분명히 있다. 경험도 했다. 정권의 힘을 빌려 방송개혁을 하겠다면 그 생각은 빨리 버릴수록 좋다.

교훈은 인생 도처에 있다. 지금까지 문자 메시지 청탁이 있었다 하더라도 이번에 뼈저리게 반성하고 내친다면 그보다 더 귀한 교훈이 어디 있겠는가. 일부 벌거벗은 언론사 간부들. 제발 그 짓 좀 그만하라. 당신들 때문에 욕먹는 착한 후배들 보기가 민망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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