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랑 칼럼] 병귀승,불귀구(兵貴勝不貴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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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랑 칼럼] 병귀승,불귀구(兵貴勝不貴久)
  • 이정랑의 고전탐구
  • 승인 2020.02.03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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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는 전쟁을 오래 끌지 않는다.

“이는 손자가 전쟁에서의 인력‧물자‧재력의 상호 의존관계에 입각하여 제기한 속전속결의 방침으로써, 『손자병법』 「작전편 作戰篇」에 나온다. 손자는 날이 갈수록 길어지는 지구전은 군대를 피곤하게 만들며 날카로움도 꺾어놓는다고 인식했다.“

이정랑 언론인 (중국고전 연구가)
이정랑 언론인 (중국고전 연구가)

오랫동안 외지에 나가 싸우게 되면 국가의 지원이 딸리게 되고, 그 틈을 노리고 제후가 침범하면 뒷감당하기가 실로 벅찰 수밖에 없다. 손자는 전쟁의 실제 상황, 특히 교통 운수‧재력‧물자 등과 같은 조건의 한계를 고려한 끝에 “전쟁을 잘 하는 자는 장정을 두 번 징발하지 않으며, 군량을 세 번 이상 나르지 않게 한다.”는 구체적인 요망 사항까지 제기하고 있다. 이는 당시 사회의 생산 수준에 부합하는 요구였다.

진시황은 대장 몽염(蒙恬)에게 북벌을, 도수(屠睢)에게 수군을 이끌고 남쪽을 정벌하도록 했다. 이 정벌 전쟁은 10년 이상이나 걸렸다. 장정들은 갑옷을 입고 싸움에 참여했고, 젊은 여성들은 전쟁 물자를 날라야 했다. 그로 인해 주요 생산수단인 농사와 배 짜기가 중단되었다. 진시황이 죽고 불과 4년 만에 나라가 망했는데, 역사가들은 이를 두고 ‘전쟁을 남발하다 불러들인 화’란 뜻으로 ‘궁병지화(窮兵之禍)’라고 했다.

한 무제 유철(劉徹)은 앞 임금들인 문제(文帝)‧경제(景帝)가 평화기에 쌓아놓은 튼튼한 경제력을 대외 정벌에다 모조리 소모하는 바람에, 천하가 불황에 허덕여야 했다.

미국은 월남전에 50만 군대를 투입했고 매년 약 300억 달러를 쏟아 부었지만, 돌아온 것은 비난의 화살뿐이었다. 아랍과 이스라엘의 전쟁을 비롯한 각종 전쟁들은 예외 없이 지구전의 폐단을 입증했다.

전쟁은 적대적인 쌍방이 서로 대립함으로써 존재한다. 갑이 지구전에서 실패했다는 것은 을이 지구전에서 승리했음을 말한다. 때로는 갑 쪽에서 속전속결을 원하지만 을 쪽에서는 지구전을 꾀하면서 상대방을 끌어들이려는 경우도 있다.

‘병귀승, 불귀구’는 전쟁의 일반적인 규율을 말한 것이다. 현대전의 조건과 특징은 이미 그 옛날 춘추시대와는 비교가 안 되며, 전쟁으로 인한 소모의 규모도 ‘하루에 황금 한 수레’ 운운하던 시대와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전쟁준비도 냉병기 시대와는 크게 다르다. 그럼에도 이 사상은 여전히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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