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명 칼럼] 신뢰가 얼마나 무서운가
상태바
[이기명 칼럼] 신뢰가 얼마나 무서운가
  • 이기명 팩트TV 논설위원장
  • 승인 2020.01.09 19: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믿는가? 진짜 술 끓었나

【팩트TV-이기명칼럼】

■ 신뢰라는 이름의 보석

술은 끊기보다 끊었다는 것을 믿게 하는 게 더 어려웠다.

“선생님, 대통령이 따른 술입니다. 한 잔 드십시오.”

사양했다. 대통령이 웃으면서 한 말은 ‘참 독하시다.’ 그러면서 ‘잘 끊으셨습니다. 대단하십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렇게 넉넉한 분이셨다.

술을 끊은 지 몇십 년. 그렇게 끊은 술인데도 아직도 믿지 못한다. 무엇이 문제인가. 신뢰다. 제2의 고향인 용인으로 피난 간 나이는 열여섯. 할 일이 없어 동네 애들과 지게를 지고 나무를 하고 담배를 피우고 막걸리를 마셨다. 그때 배운 술·담배가 수십 년을 지속했다. 고등학교 때도 담배를 숨어서 피웠고 술도 마셨다. 못 끊었다. 종로지구당 뒷골목에 인근 여학교 학생들이 옹기종기 도둑 담배를 피운다. 옛날 내 생각이 난다.

노 대통령 만나고 술을 끊었다. 술 먹으면 말이 많다. 정치인을 후원한다면서 술 마시고 실수나 하면 그게 무슨 꼴이냐. 작심했다. 술·담배를 동시에 끊었다. 다음부터 술이 무서웠다. 피해 다녔다. 술자리에는 얼씬도 안 했다.

친구 놈들 참 고약했다. 술 못 끊게 하느라고 온갖 짓을 다 했다. 어쩌다가 술자리에 같이하면 딱 한 잔만 마시라고 한다. 거절하면 입에만 대라고 한다. 혼자 자리를 뜬다. 그렇게 끊은 술이다. 5년 동안 무서워 술을 피해 다녔다. 이제는 자신 있다. 그래도 안 믿는다. 바로 신뢰다. 이렇게 신뢰가 무섭다.

(사진출처 - 자유한국당)
(사진출처 - 자유한국당)

■ 1956년 5월 5일

1956년 5월 6일 서울역. 분노한 군중이 광장을 메웠다. 잠시 후 해공 신익희 선생의 시신을 모신 영구차를 청년 학생들이 감쌌다. 5월 3일 한강 백사장에서 30만 인파를 앞에 두고 독재타도를 외치시던 해공이 침묵으로 돌아온 것이다. 선거유세를 위해 호남으로 향하던 선생이 열차 안에서 돌아가셨다. 국민들은 이승만 정권의 암살이라고 믿었다.

시신을 모신 영구차는 경무대로 향했고 결국 경무대 앞 발포 사건으로 확대됐다. 바로 ‘5.5 경무대 발포사건’이다. 왜 국민들은 분노했는가. 독재정권이 발표한 심장마비라는 해공의 사인을 믿지 못한 것이다. 수도 없이 거짓말을 늘어놓은 이승만 정권. 믿을 국민이 없었다.

이승만의 후계자 이기붕을 국민은 불신했고 민주당 지도자인 해공 신익희 선생을 신뢰했다. 신뢰란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 억울한 정치인

억울한 정치인이 많다. 무슨 말을 해도 믿지 않는다고 탄식한다. 미치겠단다. 자업자득이다. 비록 자신이 한 짓은 아닐지라도 선배 정치인들이 저지른 짓이다. 험지를 선택한다는 야당 대표는 갈팡질팡이다. 자신이 없는 것이다. 신뢰와 직결된다.

노무현 대통령이 장관 시절 내 아들 주례를 서 주셨다.

“이기명 선생님이 후원금을 모아주시지는 못하지만, 좋은 분들을 많이 모아 주셨습니다.”

주례사 중에 한마디 하신 것이다. 자부심을 느꼈다. 사람이 먼저다. 지금도 정치인들이 후원회장을 요청해 온다. 훌륭한 정치인들을 도와주는 게 얼마나 보람 있는 일인가.

노무현 대통령이 국회의원 출마할 때 독일에 유학 중이던 유시민(노무현재단이사장)이 볼펜으로 쓴 엽서를 보내 왔다. 선거 사무실에 붙어있는 응원 편지를 보며 얼마나 기운이 났던가. 유시민 하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지금은 제1야당 원내대표다. 그러나 별로 언급하고 싶지 않다. 역시 신뢰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 이낙연 국무총리가 당선자 대변인이었다. 그때 당의 중진(이름은 안 밝힌다)이 내게 조용히 귀띔했다. 지금이 정치자금을 마련할 절호의 기회다. 내가 주선할 테니 선생님은 가만히 계시라. 대변인에게 전 했다. 그는 웃었다. 상종 안 하면 된다고 했다. 그 정치인은 이후 감옥을 들락날락했다.

정치적 소신이야 다를 수가 있다. 한국당이 좋으면 지지할 수 있다. 문제는 그가 지니고 있는 신뢰다. 어느 한국당 의원이 내게 후원회장을 해 달라고 하면 어떻게 할까. 별걱정을 다 하고 있다.

 

■ 지도자와 신뢰

대통령의 신년사를 들었다. 오랜 교분도 있지만, 그의 가슴 깊은 곳에 있는 신뢰는 내가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 바쁜 민정수석 시절에도 무심코 법률과 관련해 물어보면 법전을 펼쳐가며 오랜 시간 설명을 해 준다. 다음부터는 아예 자문을 구하지 않았다.

신년사를 들으면서 전달되는 느낌은 신뢰다. 지금 온 국민의 관심사인 검찰개혁은 성공하리라고 믿는다. 아울러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 자신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고 말할 때 얼마나 감격했는가.

오죽하면 식당에서 혼자 냉면 먹던 그와 악수도 못 하고 냉면값 못 내준 것에 얼마나 아쉬워했던가. 무너진 태산처럼 신뢰는 사라졌다. 그렇게 원통할 수가 없었다. 지도자라고 믿었던 사람의 신뢰가 무너지는 것을 목격하는 슬픔을 아는가.

기회는 사라졌다가도 다시 온다. 기회는 있다. 신뢰를 회복할 기회는 있다. 지금 신뢰를 상실한 한국 정치지도자들이 명심해야 할 것은 기회를 잃는 것도 다시 찾는 것도 자신의 책임이라는 사실이다.

검찰개혁을 위한 인사가 단행됐다. 그러나 행위의 선악은 결과가 결정한다. 심판이 휘슬을 불기 전에는 골이 아니다. 심판은 누군가. 국민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