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환 칼럼] 이 산이 아닌가 봐 -빨갱이 몽둥이에서 평화 경제 여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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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환 칼럼] 이 산이 아닌가 봐 -빨갱이 몽둥이에서 평화 경제 여망으로
  • 문경환 주권연구소 연구원
  • 승인 2019.12.31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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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이 저물고 있다. 국내외에 많은 변화를 남긴 한 해였다. 사회 변화를 정확히 인식하기 위해서는 다른 객관 지표보다 먼저 민심의 변화를 살펴봐야 한다. 실제 사회를 바꾸는 힘은 대중에게 있기 때문이다.

1. ‘종북 빨갱이’ 논리로 점철된 대한민국 역사

(1) “문재인 대통령이 종북좌파에 둘러싸여있다.”

​지난 9월 해리 해리스 주한미대사가 여야 국회의원을 관저에 불러 “문재인 대통령이 종북좌파에 둘러싸여 있다는 얘기가 있다”고 발언해 논란을 빚었다.

​그런데 이런 식의 발언은 해리스 대사만 한 게 아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지난 1월 당대표 후보 시절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공안검사 시절에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벌했던 사람들이 문재인 정부에 들어가 있다면서 “종북좌파가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모습을 더 기다릴 수 없다.

힘을 합해서 막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나경원 전 원내대표, 홍준표 전 대표도 “좌파독재”, “주사파 정권” 등의 발언을 늘 해왔다. 막말의 대가 민경욱 의원은 검찰개혁 촛불을 두고 “종북좌파의 관제데모”라고 비하했다.

​내란선동으로 인지도를 높이고 있는 전광훈 목사도 “대한민국이 종북화, 공산화” 되었다며 문재인 대통령 하야를 요구했다.

​언론도 색깔론 공세의 선두주자다. 조중동과 종편은 종북몰이에 자기 지면과 화면을 아끼지 않는다. 심지어 이들은 ‘종북관상’이니 ‘종북부부 순위’ 따위의 저널리즘을 상실한 보도를 하고도 부끄러움을 모른다. 이들은 명예훼손으로 거액의 벌금을 물면서도 이런 보도를 멈추지 않는다.

​최근 적폐세력의 핵심 무기로 떠오른 검찰도 색깔론에 빠져 있다. 2011년 한상대 검찰총장은 취임사에서 ‘종북좌파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2014~2015년 재미동포 신은미 씨에 대한 검찰의 종물몰이 수사는 대표적 사건이다. 당시 검사는 “대동강맥주가 정말로 맛있다고 생각하나?” “북한 강물이 어떻게 깨끗할 수가 있나?” 따위의 질문을 했다고 한다. 이게 대한민국의 최고 엘리트로 꼽히는 검사의 수준이다.

​이처럼 주한미대사부터 자유한국당, 태극기부대, 언론, 검찰 모두 ‘종북’ 타령을 해 왔고 지금도 하고 있다. 이들은 아직도 냉전 시대를 살고 있다.

(2) 대한민국의 근본이념이 되어버린 논리

​일제가 패망하자 친일파들은 미군정에 충성하는 친미파로 변신했다. 이들은 자신의 과거 행적을 세탁하기 위해 새롭게 ‘빨갱이 사냥’이라는 색깔론을 만들었다.

자신들이 미국을 받들면서 반공투사로 활약하여 한국의 ‘공산화’를 막아냈다는 것이다. 친일파가 기득권을 잃지 않고 해방 후에도 한국 사회의 권력층에 대를 이어 남을 수 있었던 결정적 논리가 바로 이것이다.

​이들은 권력이 위태로울 때마다 이 논리를 꺼내들었다. 이들은 지난 70여년을 ‘나라가 혼란스러우면 북한이 쳐들어온다’, ‘자기를 반대하는 자는 북한과 손잡고 한국을 공산화하려는 빨갱이다’, 이런 논리로 민주주의를 가로막았다.

​4.19 혁명 당시에도 내무장관은 담화문에서 “마산 사태의 배후조종에는 적색마수가 개재된 혐의가 있어 수사 중”이라고 발표하고 반공검사 오제도를 마산에 파견해 ‘적색분자’를 색출한다며 무고한 시민들을 마구잡이로 체포했다. 그래도 시위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자 ‘좌익공산세력’의 시위를 막는다며 계엄령을 선포했다.

​5.18 광주항쟁 당시에도 계엄사령관은 담화문에서 “상당수의 타 지역 불순 인물 및 고첩(고정간첩)들이 사태를 극한적인 상태로 유도”했다면서 광주항쟁의 배후에 북한이 있는 것처럼 묘사했다. 군부의 통제 아래 있던 언론들도 같은 논조로 보도했다. 지금도 극우단체들은 5.18 광주항쟁에 북한이 개입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밖에도 반정부시위가 격화되면 매번 등장하는 간첩단 사건, 선거 때면 나타나는 북한 관련 사건들도 모두 같은 맥락이다. 국민의 시선을 북으로 돌려 ‘사회 혼란은 남침을 부른다’, ‘반정부 시위는 북한이 사주한 것’, ‘안보 위기가 있으니 여당을 찍어 사회를 안정시켜야 한다’는 식의 논리를 유포하는 것이다.

​이 논리는 너무 뿌리가 깊어 대한민국의 근본이념이나 마찬가지가 되어버렸다. 실제로 박정희는 쿠데타 직후 ‘혁명공약’ 제1조에 ‘반공을 국시의 제1의로’ 삼는다는 내용을 넣었다. 어디서나 ‘빨갱이’나 ‘종북’이라는 말이 나오면 모두 긴장한다. 상대를 공격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색깔론이며, 색깔론 공격을 받은 사람은 어떻게든 벗어나려 발버둥치지만 한번 ‘빨갱이’, ‘종북’으로 낙인찍히면 결코 빠져나올 수 없다.

​주한미대사부터 자유한국당, 태극기부대, 언론, 검찰 등 적폐세력들이 냉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아직까지도 ‘종북 빨갱이’ 타령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 ‘종북 빨갱이’ 논리의 전제와 왜곡된 민심

​(1) ‘종북 빨갱이’ 논리의 세 가지 전제

​70년 이상 위력을 떨친 ‘종북 빨갱이’ 논리는 몇 가지 전제를 필요로 한다.

첫째, ‘북한은 때려잡아야 할 악마, 호시탐탐 남침 기회를 노리는 적’이어야만 한다.

​‘종북’이란 ‘북한을 추종한다’는 뜻이므로 ‘종북’이 부정적 의미를 가지려면 북한이 부정적 존재여야만 한다. 한국 사회에서 북한은 절대악이었다. 그런데 북한이 ‘악마’라고 해도 우리와 관계가 없으면 굳이 미워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북한 악마화’는 ‘북한 남침야욕’과 쌍으로 붙어다닌다. 이렇게 되어 ‘악마와 같은 북한이 남침을 해서 한국도 지옥으로 만들려고 한다’는 논리가 탄생한다.

​지난 70년 동안 국가보안법에 의해 북한을 조금이라도 긍정적으로 표현하면 처벌을 받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무조건 북한을 악마로 묘사해야만 하였다. 그리고 70년 넘게 이 상태가 지속되자 이는 하나의 신념, 종교가 되었다.

북한을 악마로 생각하지 않는 것은 이단이요 신성모독이며 대한민국 국민으로 인정받을 수 없는 행위다. 비전향장기수에게 전향서를 강요하고, 신은미 씨를 강제추방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전향서를 써서 북한을 악마라고 ‘간증’해야 국민으로 받아들이며, 이를 거부하면 강제추방하는 것이다.

둘째, ‘북한은 물론 중국, 소련 등 공산국가는 비인간적’이어야만 한다.

​‘빨갱이’란 공산주의자를 비하하는 표현이다. 박정희가 제1국시로 내세운 ‘반공’은 공산주의를 반대한다는 뜻이다. 공산주의, 사회주의는 자본주의 체제의 핵심 구조인 ‘생산수단의 사유화’를 금지하여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를 없애는 것을 표방한다.

이런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논리로 자본주의 진영에서 개발한 것 중의 하나가 ‘공산국가의 비인간성’이다. 즉, ‘공산국가는 공산당 일당독재를 통해 국민을 비인간적으로 학대한다’는 논리다.

​그래서 북한, 중국, 소련에 대한 이야기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정치범 수용소’나 ‘숙청’, ‘기아’로 인해 엄청난 국민이 죽었다는 ‘소문’이다.

예컨대 노벨 문학상을 받은 솔제니친은 소련에서 공산당 때문에 무려 1억 1천만 명이 죽었다고 주장했다. 당시 소련 인구가 3억 명이 안 되니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주장이지만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이런 식의 ‘소문’은 지금도 북한을 대상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조중동과 종편은 틈만 나면 북한에서 누가 처형당했다느니,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갔다느니 보도했다가 은근슬쩍 다시 부활시킨다. 2018년에 한국을 방문해 주목을 받았던 현송월 단장도 수많은 ‘죽었다 살아난’ 사람 중 한 명이다.

​한편 공산국가에 대한 악선전은 한국도 공산화가 되면 저런 지옥이 펼쳐진다는 공포감을 심어주었다. 그리고 그런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빨갱이’는 사회에서 철저히 격리해야 하는 처단 대상이 되었다.

셋째, ‘미국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신적인 존재’여야만 한다.

​일제강점기 친일파들이 백성들에게 ‘일본은 천하무적이고 선진국이니 일본에 저항하지 말고 순종하는 게 유익하다’고 설파한 것처럼 친미파들은 국민들에게 ‘미국이 세계초일류국가니 반미하지 말고 미국을 섬겨야 우리가 잘 살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 이런 미국이 북한, 중국, 소련 공산당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고 있으니 은인으로 모시고 감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미국은 그 앞에서 감히 머리도 들어서는 안 되는 절대존재, 경외와 숭배의 대상, 선진 문물의 기준이 되었다. 미국은 우리를 지켜주는 보호자, 경제번영을 가져다 준 은인이었다. 그리고 이런 미국을 반대하는 민족자주세력은 ‘종북 빨갱이’이 되었다.

(2) 왜곡된 민심

​이런 전제가 있었기에 해방 이후 70년 넘게 대중은 친미, 반공, 반북 논리에 눌려 억압을 받았다. 심지어 살아남기 위해서는 친미, 반공, 반북을 주창하는 적폐세력에게 줄을 대야한다는 인식도 팽배했다.

​대구의 예를 보자. 대구는 일제강점기에 ‘조선의 모스크바’로 불릴 정도로 사회주의 활동이 왕성했고 항쟁이 끊이지 않은 도시였다. 1907년 국채보상운동도 대구 중앙로에서 시작됐고, 1946년 미군정에 반대한 10월 항쟁도 대구에서 시작했다. 대구 팔공산의 야산대는 빨치산 활동의 시초 가운데 하나였다. 1956년 대선에서 무소속 조봉암 후보는 전국적으로 30%를 얻는데 그쳤는데, 대구에서만 72.3%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진보 색채가 강한만큼 탄압도 많이 받았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대구형무소 수감자 2500여 명과 민간인 4000~6000명이 대구 가창골에서 무참히 학살당했다. 가창골은 한국 최대 민간인 학살지다. 박정희는 자기 고향부터 좌익세력을 쓸어버리겠다며 대대적인 탄압에 나섰다. 민주민족청년동맹 사건, 보도연맹 피학살자 유족회 사건, 인혁당 사건, 인혁당 재건위 사건 등 여러 사건이 줄줄이 터지며 민주화운동, 진보운동 세력을 초토화했다.

▲ 인혁당 재건위 사건 재판. © 사진 합성
▲ 인혁당 재건위 사건 재판. © 사진 합성

이런 참혹한 탄압의 결과 대구는 보수의 상징도시가 되어버렸다. 공포를 주입해 순응하게 만드는 전략이다.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가족을 살리기 위해 자유한국당 세력에 줄을 대고 학살자에게 충성해야 했다. (대구와 관련한 위의 내용은 「좌파도시 대구는 어떻게 반공과 지역주의의 첨병이 되었나」, 한겨레, 2017년 1월 11일 참조) 경남지역도 대구와 비슷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오랜 기간 미군정과 독재정권의 탄압이 이어지고 국가보안법에 의한 처벌이 지속되면서 민심은 왜곡되었다. 불의를 보고도 참는 게 ‘미덕’이 되는 사회가 되었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 너는 나서지 말고 뒤로 빠져라, 이처럼 적폐에 순응하고 체념하는 논리가 횡행하였다. 세계가 탈냉전 시대로 진입한지 30년이 흘렀지만 한국은 좀처럼 냉전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3. 전제가 무너지니 논리도 안 통한다

​70년 넘게 한국 사회를 지배해온 논리가 더 이상 통하지 않고 있다. 전제부터 무너졌기 때문이다.

(1) 무너진 세 가지 전제

첫째, 북한에 대한 인식이 틀렸음을 확인했다.

북한을 때려잡을 수도 없고, 북한이 악마도 아니고, 호시탐탐 남침 기회를 노리지도 않는다는 걸 알았다.

​북한을 ‘때려잡자’는 생각은 우리가 북한보다 우월하다, 특히 군사력에서 앞선다는 전제에서 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조차 북한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 몸을 사리는 상황에서 저런 생각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북한을 ‘악마’로 여길 수 있었던 건 북한의 실체를 직접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정부와 언론이 보여주는 것만 봐야 하는 시절에는 북한에 뿔 난 도깨비만 산다고 여겼다. 극소수가 진실을 이야기했지만 그 진실을 접할 수 있는 사람도 극소수에 불과했다. 정부는 이런 사람들을 ‘빨갱이’로 몰아 처벌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한을 다녀온 사람들이 늘고 사진과 영상으로 북한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기회도 늘었다. 과거에는 북한 사진이 공개돼도 조작이다, 연출이다 하면서 인정하지 않고 폄하하기 바빴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것도 통하지 않는다. 요즘 사람들은 영상 세대다. 태어나기 전부터 사진을 찍히고, 유치원에 다니기 전부터 사진을 찍는다. 그래서 사진과 영상을 통해 정보를 얻고, 또 거기서 진실을 찾아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만약 북한이 독재사회, 인권이 없는 사회라면 사진과 영상에서 금방 찾아내고 만다.

​하지만 국민이 생중계로 지켜본 북한의 모습은 전혀 ‘악마’가 아니었다. 오히려 사람을 소중히 대하고 겸손하며 세련되고 또 자존심도 강하다. 한 마디로 외유내강(겉은 부드럽게 보이지만 속은 곧고 굳셈)의 전형이다. 북한 국민들이 ‘노예’처럼 산다는 인식도 다 깨졌다. 다들 밝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었다.

​북한이 호시탐탐 남침을 노린다는 말도 설득력을 잃었다. 그런 징후도 보이지 않을뿐더러 핵개발을 완성해 미국도 눈치 보는 지금 상황이 북한에게는 ‘남침’하기 절호의 기회임에도 오히려 대화와 협상을 앞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북한에 대한 기존의 인식, 전제가 다 틀렸음이 드러났다.

둘째, 공산국가라고 해서 비인간적이고 문제가 많다는 인식도 틀렸다.

​중국도, 러시아도 모두 열려서 마음대로 오고 간지도 30년이 다 돼 간다. 많은 이들이 중국, 러시아를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 가서 보니 사회주의, 공산국가라고 해서 사람이 살 수 없는 그런 사회는 아님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제도와 문화가 달라 부딪히기도 했지만 그냥 살아보면 큰 지장 없고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임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이제 중국은 우리의 최대 교역상대국으로 매우 중요한 이웃이 되었다. 먹고 살기 위해서라도 중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러시아와는 아직 그 정도의 교류를 하고 있지 않지만 러시아 극동의 풍부한 자원과 향후 펼쳐질 동북아 경제권을 고려하면 러시아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게 우리의 미래를 위한 길이다.

​그러니 기존의 ‘공산국가와는 상종하면 안 된다’는 인식이 지금은 통하지 않는 것이다. 아직까지도 ‘반공’을 부르짖는 사람들은 현실 부적응자거나 주변 정세에 깜깜이인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셋째, 미국에 대한 환상이 다 깨졌다.

​북한이 말과 행동으로 미국을 잘근잘근 씹고 있는데도 꼼짝 못하는 모습을 전 세계인과 함께 다 봤다. 미국 내에서조차 한심하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지난 5월 23일 크리스 쿤스 민주당 상원의원은 “말만 하지 말고 직접 행동을 할 때”라며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답답한 심정을 비췄다.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지난 12월 22일 “미국은 북한의 핵 보유를 용납할 수 없다고 말하지만, 현 시점에서 그것은 진짜 정책이 아닌 수사적인 것에 더 가깝다”라며 실제 행동은 하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이제 미국은 더 이상 공포와 경외의 대상이 아니다.

​또 과거에는 미국을 최고라고 여기며 선전국의 표준으로 생각했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며 미국 경제 시스템에 대한 신뢰는 바닥으로 떨어졌으며, 한심한 미국 정치 현실, 양극화와 인종차별 등 사회 문제, 낙후한 기술력 등 모든 것이 후진적인 나라로 인식된다.

결정적으로 미국에게 우리 안보를 맡길 수 없음이 확인되었다.

​올해 들어 북한이 단거리미사일을 거듭 발사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모른 척 했고 오히려 단거리미사일은 미국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 한국에겐 위협이겠지만 거긴 원래 그래왔다는 식의 태도를 보였다. 한국을 지켜줄 생각이 없음을 드러낸 것이다.

오히려 미국은 우리 안보를 위협한다. 2017년에 트럼프 대통령은 “전쟁을 하더라도 한반도에서 하고, 수천 명이 죽더라도 한반도에서 죽지 미 본토에서 죽지 않는다”라며 한반도 전쟁위기를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이런 미국에게 우리 운명을 맡길 수 없음은 당연하다.

​미국에게 우리 경제도 맡길 수 없다. 우리가 미국에게 경제를 의존하는 게 아니라 거꾸로 미국이 우리를 뜯어갈 궁리를 하고 있다. 일단 미국 경제도 파산 직전이다. 그러다보니 주한미군 지원금을 5배로 올리라는 강도짓까지 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기가 저지른 미중 무역전쟁으로 아이폰을 만드는 애플 기업이 어려움에 처하자 엉뚱하게 ‘삼성’이 문제라며 ‘스마트폰 전쟁’에 개입할 뜻을 비치기도 했다. 미국에게 한국 경제는 지켜주고 키워줘야 할 대상이 아니라 그저 약탈의 대상일 뿐이다.

​이처럼 미국은 더 이상 우리 편도 아니고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신적인 존재도 아님이 드러났다.

(2) ‘이 산이 아닌가 봐’

​‘종북 빨갱이’ 논리의 전제가 모두 무너지고 있기에 더 이상 미국과 적폐세력의 주장은 통하지 않는다.

​이제 ‘북한의 남침을 막기 위해 한미동맹을 절대시하자’는 논리는 호응을 얻지 못한다. 북한에 대해서는 남북협력과 통일로 가기를 바라며, 미국에 대해서는 국익을 우선하는 자주외교로 가야 한다고 여기고, 중국·러시아와도 손을 잡고 동북아 평화경제를 이뤄야 미래의 번영을 보장받는다고 생각한다. 이게 대세다.

​‘종북 빨갱이 척결’을 외치는 해리스 대사, 황교안 대표, 전광훈 목사의 목소리는 대중에게서 고립되고 있다. 물론 여전히 골수 마니아층이 있지만 이제는 다수가 아니라 소수다. 이들의 입지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검찰과 언론을 사냥개로 풀어 어떻게든 개혁을 막아보려 광란의 마녀사냥을 벌였지만 끝내 공수처법 통과 등을 막지 못한 근본 바탕에는 이런 국민 인식의 변화가 있다.

​이제 전쟁을 부추기는 세력은 대중의 규탄 대상이 되고 버림을 받는다. 반면 평화세력이 국민의 지지를 받는다. 2010년 지방선거가 온통 천안함 사건으로 뒤덮였지만 ‘1번 전쟁 2번 평화’라는 야당의 주장이 먹히면서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지금의 자유한국당)이 참패를 당하며 심판받았다. 이때부터 이미 국민은 평화세력과 전쟁세력을 나눠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경향은 이제 대세가 되었다.

​바야흐로 한국도 냉전에서 벗어나고 있다. 군사적 대결 청산, 상호 주권 인정, 화해협력 제도 마련 등 구조적 변화도 하나둘 이루어지고 있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한국 국민의 인식 변화, 민심의 변화가 냉전의 얼음을 빠르게 녹이고 있다.

4. 한국 국민의 요구와 일치하는 북미 관계는 무엇인가

​새해가 되면 모든 이들이 북미 관계의 향방을 주목해 볼 것이다. 북한은 과연 경고한 것처럼 ‘새로운 길’을 갈 것인가, ‘새로운 길’이란 과연 무엇인가, 미국은 어떤 대응을 할 것인가, 모두가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다.

​지금 북미 관계는 둘 중 하나로 가게 되어 있다. 하나는 북한의 요구가 관철되는 것이다. 북한은 2018년 6월 싱가포르 합의를 지킬 것을 요구한다. 북미관계를 정상화(수교)하고 대북적대정책을 폐기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모든 제재를 해제하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미국의 요구가 관철되는 것이다.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하면 경제 혜택을 줄지 고려해 보겠다는 것이다.

​한국 국민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바란다. 그런데 미국의 요구를 보면 북한이 받아들일 가능성이 없고 결국 북미 사이에 군사적 대치와 외교적 갈등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 한국 국민의 바람과 상반된다. 반면 북한의 요구대로 싱가포르 합의가 이행되면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번영 시대가 열리므로 국민의 요구와 일치한다.

당시 많은 국민들이 북미정상회담 결과를 보고 환호한 것도 이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정상 합의를 환영하며 “이번 합의를 바탕으로, 우리는 새로운 길을 갈 것입니다. 전쟁과 갈등의 어두운 시간을 뒤로하고, 평화와 협력의 새 역사를 써갈 것입니다. 그 길에 북한과 동행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또 한국 국민은 국익 우선 외교의 원칙으로 미국을 상대해야 한다고 여긴다. 이를 위해서도 북한의 요구가 바람직하다. 미국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미국은 을의 위치로 떨어지면서 한국에 아쉬운 손길을 내밀 수밖에 없다.

​지난 12월 7일 트럼프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통화를 요청한 것도 이런 점을 잘 보여준다. 당시는 리태성 외무성 미국담당 부상 담화, 박정천 조선인민군 총참모장 담화,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 담화, 김성 유엔주재 대사 성명 등 북한이 미국을 연속 압박해 미국이 심리적으로 위축되던 시기다.

​미국이 한국에 아쉬운 손길을 내밀어야하는 처지가 되면 한국의 입지도 그만큼 넓어진다. 한미관계에서 미국이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것들에 대해 우리의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주한미군 지원금 5배 인상을 강요한다거나, 2018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무시하고 삼성, LG 세탁기에 긴급수입제한조치를 취한다거나 하는 미국의 횡포에 맞서 우리 국익을 더 강하게 내밀 수 있다.

​이렇게 보면 북미 관계가 앞으로 북한의 요구대로 풀리는 게 한국 국민의 요구와 일치함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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