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훈 칼럼] 남측 시설물 철거 통보…‘금강산관광 중단 11년’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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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훈 칼럼] 남측 시설물 철거 통보…‘금강산관광 중단 11년’의 진실
  • 박명훈 주권연구소 연구원
  • 승인 2019.11.28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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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관광 중단 11년의 진실 찾기

남북정상회담이 연이었던 지난해 두 정상이 평양공동선언에서 금강산관광 재개를 합의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올해 신년사에서 “민족의 명산을 찾아보고 싶어 하는 남녘 동포들의 소망을 헤아려 아무런 전제조건이나 대가 없이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 관광을 재개할 용의가 있다”고 화답했다.

지난해, 새해 초만 해도 8천만 온 겨레가 금강산관광이 곧 재개되리라 믿었다. 하지만 이후 남북관계는 진전하지 못했다. 그렇게 남북이 약속한 다방면의 실무·고위급 협의조차 열리지 않은 채 하염없이 시간만 흘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10월 23일 금강산을 현지지도 한 자리에서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지는 너절한 남측시설들을 남측의 관계 부문과 합의하여 싹 들어내도록 하고 금강산의 자연경관에 어울리는 현대적인 봉사시설들을 우리 식으로 새로 건설하여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자 일부에서는 북측이 남측 민간기업의 재산을 ‘강탈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남측 시설물을 일방적으로 처분하는 북한이 금강산관광 재개를 비롯해 남북관계를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주장들이 과연 사실일까?

금강산관광을 둘러싼 진위를 알기 위해서는 그동안의 일들을 세세하게 따져봐야 한다. 2008년 한국(이명박) 정부의 독자 제재로 금강산관광이 중단된 지 11년째다. 금강산관광이 시작되고 중단된 과정, 남측과 북측의 입장을 함께 살펴보며 제대로 된 사실검증(팩트체크)을 해보자.

 

◆ 금강산관광 재개 : 누가 거부했나

김대중 정부 당시 1998년,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소떼를 몰고 북녘으로 갔다. 이를 계기로 남측과 북측은 금강산관광-남측의 시설물 건설에 합의한다. 이 과정에서 현대그룹 산하 현대아산이 남측을 대표하는 주사업자로 선정돼 금강산호텔 등 여러 시설물들을 금강산에 건설했다. 남녘 사람들이 속초에서 배를 타고 북측 해금강을 지나 산길을 오르며 금강산을 만끽했다. 금강산관광은 이렇게 시작됐다.

이후 금강산관광은 2008년까지 이어진다. 매해 수십 만 명이 넘는 남측 주민들이 찾은 금강산 일대는 민족화합의 명소로 우뚝 솟아올랐다. 그러던 중 대북적대정책을 앞세운 이명박 정권 초기 금강산에서 ‘박왕자 씨 사건’이 일어났다.

남북 합의 하에 공동조사단이 꾸려져 금강산 일대에서 진상규명을 벌였다. 북측은 금강산관광 총사령관 명의로 유감과 재발 방지를 밝힌다. 그러나 남측은 북 당국의 공식사과 없이는 재개가 불가능하다며 관광 재개를 거부했다.

이후 2009년 8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금강산관광 재개를 위해 평양을 찾았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현정은 회장에게 금강산관광의 조속한 재개를 확약했다. 이 자리에서 쌍방(남측 : 현대그룹, 북측 :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이 맺은 합의안의 핵심내용은 다음과 같다.

“중단된 금강산관광을 빠른 시일 안에 재개하며 금강산 제일봉인 비로봉에 대한 관광을 새로 시작하기로 하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께서 취해주신 특별조치에 따라 관광에 필요한 모든 편의와 안전이 철저히 보장될 것이다.”

북측의 최고지도자가 정부 인사도 아닌 현정은 회장에게 직접 ▲금강산관광 ▲철저한 안전 보장을 확약한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파격 제안에도 남측은 요지부동이었다. 남측과 북측은 고위급 실무회담을 통해 금강산관광 재개를 합의했지만 남측이 합의를 뭉갰다.

이와 관련해 당시 사정에 밝은 김진향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이사장에 따르면 “북측이 남측의 요구대로 북 당국의 공식사과를 전했지만 이명박 정권이 이를 무시했다”고 한다. 이처럼 금강산관광 재개를 위한 북측의 적극 노력에도 남측(이명박 정권)은 관광 재개를 거부했다. 이후 박근혜 정권도 마찬가지로 금강산관광이 어림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다 2018년 들어 상황이 반전된다. 북측이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가한 뒤, 여러 차례의 실무·고위급회담과 3차례의 남북 정상회담이 연이었다. 평화번영과 통일열망으로 온 한반도가 들썩이는 가운데 9월 평양공동선언에서 마침내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의 우선 정상화”가 명시됐다.

 

◆ ‘체계와 절차’ 따라 진행된 시설물 철거 통보

앞서 북측은 2002년 ‘금강산 관광지구법’을 제정, 현대아산 측에 금강산 일대의 관광사업 독점권을 주는 절차를 마련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이 금강산관광을 거부하며 대북적대정책을 밀어붙이자 2011년, “금강산 관광지구에 독자적 주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규정한 ‘금강산 국제관광특구법’을 새로 채택했다. 북측은 이에 따라 남측 시설물을 철거할 수 있다고 밝혔다.

따라서 ‘남측 시설물 철거 요구’는 최근 들어 불거진 뜻밖의 일이 아니다. 또한 국제법상 “위급한 상황 발생 시 국가주권에 따른 민간기업의 국유화”가 인정되고 있는 만큼 정당한 조치로 풀이할 수 있다. 원인 제공(금강산관광 중단과 그로 인한 시설물 방치)은 명백히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했기 때문이다.

11년 동안 방치된 시설물들이 금강산에 들어찬 상황. 실제로 공개된 사진으로 남측의 시설물을 살펴보면 당장 오래되고 녹슬어 낡았다는 인상을 준다. 그럼에도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올해 초 신년사를 통해 “금강산관광의 조건 없는 재개” 의사를 확고하게 전했다. 이 점을 잘 생각해봐야 한다. 새로 마련한 금강산 특구법에도 불구하고, 남측과 금강산관광 재개를 함께하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북측은 지금도 금강산관광 재개를 촉구하고 있다. 이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0월 23일, “남측 시설물 철거”를 언급하면서도 “금강산에 남녘동포가 오겠다면 언제든 환영한다”고 밝힌 사실만 봐도 잘 드러난다.

이처럼 북측의 남측 시설물 철거 통보는, 남측이 금강산관광 합의를 깬 뒤 북측이 여러 해 동안 준비해온 조치였다. 또 북측은 시설물 철거와는 별개로 금강산관광 재개 의사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 민족의 명산 가로막은 한미워킹그룹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권 당시 남측(한국정부)은 10년 가까이 금강산관광을 가로막았다. 문재인 정부로 정권이 교체된 지금은 미국의 강력한 방해로 관광이 재개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금강산관광 재개를 명시한 평양공동선언에서 불과 두 달 뒤인 11월, 남북관계에 제동을 거는 한미워킹그룹이 출범했다. 이후 미국의 압박을 받은 남측이 합의 이행에 소극적 자세를 보이면서 금강산관광 재개는 흐지부지됐다.

이와 관련해 김진향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이사장은 9월 평양공동선언 1주년을 맞아 주권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판문점선언과 평양공동선언으로 한반도에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렸음을 엄숙히 천명했는데, 평양선언 이후 (한미)워킹그룹에 묶이고 우리 스스로 안보리 제재의 프레임에 갇혔다”며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신년사에서) 북측이 아무런 전제조건이나 대가 없이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재개를 표명했을 때 (남측이) 실무회담을 제안하겠다고 생각하지만 아직까지도 그 내용이 없다. 남북관계의 모든 것들이 한미워킹그룹에 포박되어 있는 것 아닌가.”

이와 관련해 최근 김동엽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도 분석을 덧붙였다. 김동엽 교수는 11월 18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신년사에서 금강산관광 재개를 제안했던 김정은 위원장이 연말이 됐으니까 결론을 내렸다”며 “남한이 사업 재개에 나서길 기다리며 (연말까지) 참은 것”이라고 풀이했다. 북측이 올해 초부터 최근까지 남측의 금강산관광 동참을 기다려줬다는 것이다.

김동엽 교수는 그러면서 “북한이 마식령부터 해서 관광 개발사업을 하고 있는데 딱 금강산만 진행이 안 되고 있다”며 “게다가 내년 4월에 원산갈마지구가 완공되면 유휴 건설인력·장비를 금강산 개발에 투입할 수 있다. 결단의 시기가 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위 같은 상황임에도 남측이 “미국과의 긴밀한 협의”를 앞세우다 보니 남북관계에 치명적 장애가 발생한다. 미국의 주장에 따르면 북측의 허가를 받지 않는 모든 물자 반입이 금지된다. 예컨대 남측이 금강산으로 시설물 철거 장비를 들이는 그 자체가 제재 위반이다. 북측이 시설물 철거를 통보하자 김연철 통일부장관이 황급히 미국으로 날아간 속사정이 여기에 있다.

통일부는 “북측의 조치는 남측 민간기업의 재산권을 침해하고 있다” “남측 시설물에 공동점검단 파견을 위한 실무대화를 하자”며 원론적인 입장만을 되풀이하고 있다. 이러한 남측의 논리는 결국 ‘미국이 승인할 때까지 기다려 달라’는 말밖에 안 된다. 실제로 미 국무부가 “제재 완전 이행”을 압박하자 11월 22일 통일부는 다음과 같은 입장을 밝혔다.

“금강산관광 등과 관련하여 대북제재의 틀 내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있고 이후 비핵화의 진전에 따라 제재가 완화되거나 또는 해제되는 경우에 할 수 있는 것이 또 따로 있을 것.” / 11월 22일, 김은한 통일부 부대변인의 말

이러한 상황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북측이 왜 금강산 내 남측 시설물 철거 절차를 문서통지로만 진행하자고 하는지도 알 수 있다. 북측이 남북 합의가 아니라 미국과의 보조를 앞세워 금강산관광 재개를 망설이는 남측과 만나서 달리 할 말이 뭐가 있을까.

문재인 정부는 임기 절반을 넘어 반환점을 맞았다. 그러나 중점공약으로 제시한 평화통일(남북관계) 분야를 보면 이행률이 60%에 채 미치지 못한다. 무엇보다 남북관계 개선, 가장 첫머리에 제시한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재개를 실행하지 않고 있다.

“금강산 찾아가자. 일만이천봉 볼수록 아름답고 신기하구나. 철 따라 고운 옷 갈아입는 산. 이름도 아름다워 금강이라네. 금강이라네!”

▲ 노래 금강산 악보
▲ 노래 금강산 악보

글쓴이는 초등학교 때 배운 위 노래를 지금도 언제든 흥겹게 부를 수 있다. 그만큼 김대중 정부였던 시절의 통일 기대감은 높았다. 당시에도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을 방해하는 미국의 입김은 어김없었지만 그를 물리칠 자존심과 배짱이 있었다.

금강산이 막 열렸을 때와 남북이 “자주통일” “민족자주”를 약속한 2018년 판문점, 평양공동선언을 빗대 돌아보면 참 서글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사시사철 계절에 따라 금강산(봄), 봉래산(여름), 풍악산(가을), 개골산(겨울)으로 이름을 바꾸는 금강산은 오랜 역사동안 빼어난 명승지로 널리 이름을 떨쳐왔다. 그럼에도 아직 남녘의 겨레 5천만 명이 민족의 명산을 찾지 못하고 있다.

27일, 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회(민주평통)가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금강산 개별 관광’에 찬성한다는 응답이 66.8%에 달했다. 이처럼 금강산관광 재개를 바라는 여론이 드높다. 판문점선언·평양공동선언의 조속한 실천으로 온 겨레와 함께 ‘봄날의 금강산’을 만끽할 그날을 손꼽아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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